예루살렘

십자가 형(십자가 형벌)

테오필로 2007. 4. 6. 05:34

 

십자가형에 대하여 로마의 치체로(Cicero)는 가장 잔인하고 혹독한 형벌이라고 언급하였다. 십자가형은 고대 동방(신 아시리아, 페니키아, 페르시아)에서 생겨난 형벌이었으나, 로마제국은 기원전 1세기 말에 식민 통치의 방법으로 광범위한 규모로 십자가형을 적용하였다. 처음에는 노예들을 나무에 묶어 놓고 고통을 주는 체벌이었지만 기원 후 1세기부터 로마 제국에 대항하여 폭동이나 반란을 선동한 자들에 대한 처형방법으로 바뀌었고, 로마의 시민권을 가지고 있지 않은 노예들과 피지배자들에게만 이 처형 법을 사용하였다.


유대 독립전쟁 동안에 수천 명이 십자가형에 처해졌으며, 2차 유다 독립 항쟁당시인 하드리아누스 황제(117-138년)때에는 하루에 500여명이 십자가형에 처해지기도 하였다. 역사학자 요세푸스에 따르면 ‘더 이상 십자가를 세울만한 공간과 나무 십자가를 구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십자가형에 처해졌다고 한다.


십자가형은 사형수를 발가벗겨 인간적인 수치심과 조소의 대상이 되게 하는 한편, 육체적인 고통을 가장 오랫동안 가하면서 죽어가게 하는 형벌이었다. 십자가형은 죄인에 대한 극도의 고통을 줄 수 있는 형벌일 뿐만 아니라 보는 이로 하여금 강한 경고의 메시지를 전할 수 있는 형벌이었다. 또한 사형수는 사형을 언도 받은 후, 자신이 십자가에 못 박힐 나무(십자가의 가로부분)를 짊어지고 형장까지 십자가의 행렬을 하였는데 이것은 제국에 대항하는 도전에 대한 대가가 어떠한 것인지 경각심을 일깨워 주는 메시지이기도 하였다. 일반적으로 십자가의 세로 부분은 형장에 미리 세워져 있었다.


십자가형은 신체의 중요 부분에 손상을 가하지 않고, 사형수를 발가벗겨 십자가 형태로 세운 기둥에 양손과 양쪽 발이나 뒤꿈치에 못을 박아 나무에 매달리게 하였는데, 이것은 인간적인 수치심과 함께 가장 오랜 동안 고통을 당하게 하는 형벌이었고, 사형수는 몸이 처지면서 근육경련과 호흡곤란으로 질식사 하였다.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상태에서 피로와 근육경련, 기아 및 갈증으로 여러 날에 걸쳐 서서히 죽어가게 되었다.


예수님은 아침 아홉시에 십자가에 못 박혔고, 오후 세시에 숨을 거두셨는데 예수님이 이렇게 빨리 숨을 거두신 것은 혹독한 채찍질에 의하여 이미 기력이 쇠약해져 있었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쇠와 뼛조각으로 만들어진 채찍(그림)에 맞아 죽는 죄인들도 있었다고 한다.


십자가형이 성서고고학을 통해 설명된 것은 1968년 이후이다. 1968년 예루살렘의 북쪽에 있는 마을(Giv'at haMivtar)에서 발견된 26살가량의 남자 유골을 발견 하면서이다. 유대인들의 장례법에 의하면 사람이 죽으면, 바위를 파서 만든 바위무덤에 시신을 안치했다가, 탈골되면 유골함에 모시는 방법으로 장례를 치렀는데, 유골함에서 유골의 발뒤꿈치 뼈에 철제 못이 박혀 있는 것이 확인되면서, 십자가형으로 죽은 사람의 유골을 처음으로 발견하게 된 것이다. 유골의 손목뼈에는 날카로운 흠집(그림)이 있어서, 십자가형이 사형수의 손과 발이 아닌, 손목과 발뒤꿈치에 못을 박는 방법으로 집행되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그리고 무릎 아래의 두 개의 정강이뼈가 부러져(그림) 있음을 발견한 학자들은 십자가형을 집행한 자들이 해가 지기 전에 시신을 거둬 매장하기 위해서 사형수의 다리를 부러뜨린 증거로 추정한다. 실제로 요한의 복음서에 따르면 예수와 함께 십자가형을 당한 두 강도들도 안식일이 되기 전 시체를 거두기 위해 다리를 부러뜨렸다(요한 19,31-33).


십자가의 형벌은 4세기경 콘스탄티누스 황제에 의해서 완전히 폐지되었다. 그리스도교에서는 예수님이 이 십자가형으로 죽음을 당한 뒤 부활했기 때문에 십자가를 인류의 속죄를 위한 희생제사, 죽음과 지옥에 대한 승리, 또는 그리스도를 따름으로써 겪어야 하는 고난의 상징으로 사용하고 있다.


십자가에 대한 공경은 4세기 초 그리스도교가 공인된 뒤부터 시작되었는데, 성녀 헬레나(Helena)가 십자가를 발견하고, 이를 안치할 십자가성당과 부활성당이 예루살렘에 건축되었다. 335년 9월 14일이 양 성당의 헌당식 축일로 제정되자 십자가는 그리스도교의 공경 대상으로 인정되기 시작했고, 그레고리오 대교황 때엔 로마교회에도 전해졌다. 그 뒤 692년 트룰라눔(Trullanum) 교회회의를 통해 십자가 공경은 강화되었고 787년 제2차 니체아 공의회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아래 그림은 1968년에 발굴된 십자가형에 처해진 유골을 토대로 그려진 십자가형이다. 아래 사진은 십자가형에 처해진 26살 가량의 남자 발 뒷꿈치이다.

아래 부러진 다리뼈는 안식일이 되기 전에 시체를 거두기 위해 죄수가 도망가지 못하도록 다리뼈를 부러트린 것(그림 1과 2. 그림B 부분에 해당)으로 추정한다. 그림 A는 못을 박은 위치

그림 1과 A 그리고 팔목에 붉게 칠해져 있는 곳이 바로 위쪽 그림의 A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못이 관통한 부분이다.

 

 


아래 그림은 1968년에 발굴된 십자가형에 처해진 유골을 토대로 십자가형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십자가의 위에는 죄인의 죄목이 기록되었다. 

 

 

 

 

로마인들의 채찍...보통 2-3개의 끈으로, 끈에는 쇳조각이나 뼈조각을 붙여 맞으면 살갗이 찢겨나가게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