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릴래아

갈릴래아의 카나 - 카나의 혼인 잔치

테오필로 2008. 12. 18. 20:57

 

갈릴래아의 카나 - 카나의 혼인 잔치

 

요한복음서는 예수님께서 ‘갈릴래아의 카나’에서 혼인 잔치 도중에 물을 포도주로 바꾸는 첫 표징을 행하셨다고 전한다.

 

검정 : 1881년에 지어진 프란치스칸 첫 성당 1881          녹색 : 중세기 건물(14세기?)

적색 : 5-6세기. 그리스도인 무덤                                노랑, 오렌지 색 : 5세기 - 안뜰 휘장

청색 : 1-4세기 주거지

 

 

요한 2,1-11 카나의 혼인 잔치

사흘째 되는 날, 갈릴래아 카나에서 혼인 잔치가 있었는데, 예수님의 어머니도 거기에 계셨다. 예수님도 제자들과 함께 그 혼인 잔치에 초대를 받으셨다. 그런데 포도주가 떨어지자 예수님의 어머니가 예수님께 “포도주가 없구나.” 하였다. 예수님께서 어머니에게 말씀하셨다. “여인이시여, 저에게 무엇을 바라십니까? 아직 저의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 그분의 어머니는 일꾼들에게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 하고 말하였다. 거기에는 유다인들의 정결례에 쓰는 돌로 된 물독 여섯 개가 놓여 있었는데, 모두 두세 동이들이였다. 예수님께서 일꾼들에게 “물독에 물을 채워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들이 물독마다 가득 채우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다시, “이제는 그것을 퍼서 과방장에게 날라다 주어라.” 하셨다. 그들은 곧 그것을 날라 갔다. 과방장은 포도주가 된 물을 맛보고 그것이 어디에서 났는지 알지 못하였지만, 물을 퍼 간 일꾼들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과방

장이 신랑을 불러 그에게 말하였다. “누구든지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놓고, 손님들이 취하면 그보다 못한 것을 내놓는데,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남겨 두셨군요.”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처음으로 갈릴래아 카나에서 표징을 일으키시어,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셨다. 그리하여 제자들은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물을 포도주로 바꾸신 표징을 행하셨던 갈릴래아 카나에 계실 때 왕실 관리가 찾아와 아들이 카파르나움에서 아파 죽어가고 있으니 함께 가서 고쳐 달라고 청하자 멀리서 말씀으로써 두 번째 표징을 행하셨다.

 

요한 4,46-54 왕실 관리의 아들을 살리시다

예수님께서는 물을 포도주로 만드신 적이 있는 갈릴래아 카나로 다시 가셨다. 거기에 왕실 관리가 한 사람 있었는데, 그의 아들이 카파르나움에서 앓아누워 있었다. 그는 예수님께서 유다를 떠나 갈릴래아에 오셨다는 말을 듣고 예수님을 찾아와, 자기 아들이 죽게 되었으니 카파르나움으로 내려가시어 아들을 고쳐 주십사고 청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표징과 이적을 보지 않으면 믿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그 왕실 관리는 예수님께 “주님, 제 아이가 죽기 전에 같이 내려가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가거라. 네 아들은 살아날 것이다.” 그 사람은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이르신 말씀을 믿고 떠나갔다. 그가 내려가는 도중에 그의 종들이 마주 와서 아이가 살아났다고 말하였다. 그래서 그가 종들에게 아이가 나아지기 시작한 시간을 묻자, “어제 오후 한 시에 열이 떨어졌습니다.” 하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그 아버지는 바로 그 시간에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네 아들은 살아날 것이다.” 하고 말씀하신 것을 알았다. 그리하여 그와 그의 온 집안이 믿게 되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유다를 떠나 갈릴래아로 가시어 두 번째 표징을 일으키셨다.

 

갈릴래아의 카나는 ‘나타나엘’을 언급하면서 다시 한 번 더 거론된다. 거의 모든 해석학자들은 여기서 언급된 ‘나타나엘’(요한1,43-50 참조)을 사도 ‘바르톨로메오’와 동일한 인물로 인정하고 있다.

 

요한 21,2 시몬 베드로와 ‘쌍둥이’라고 불리는 토마스, 갈릴래아 카나 출신 나타나엘과 제베대오의 아들들, 그리고 그분의 다른 두 제자가 함께 있었다.

 

 

 

유대교 역사가인 요세푸스(F.Josephus)는 로마에 대항한 첫 번째 유대 항쟁(66-70년) 동안 “카나라는 이름을 가진 갈릴래아의 마을”에 한동안 머물렀다고 기록하고 있다(생애 16,86).

 

그리고 4세기에 살았던 예로니모 성인은 여호수아기 제19장 28절에서 언급하고 있는 “카나”(가나안 땅을 분배하면서 아세르 지파의 몫으로 상속된 땅으로, 티로의 남동쪽 10km에 위치한 마을, 현 레바논 지역)와 요한복음에서 이야기 하는 갈릴래아의 카나를 명백하게 구별하였는데, 갈릴래아의 카나를 매우 특별한 마을로 인식하고 있었다(용어사전 117,3). 예로니모 성인은 예수님의 첫 기적과 공생활을 시작한 곳이 나자렛에서 아주 가까운 갈릴래아 지역이라고 덧붙였다.

 

프란치스칸 ‘뽀지본시의 니콜로’가 1347년에 쓴 글에는 “갈릴래아의 카나라는 마을은 그리 크지 않은데...거기에는 예수님께서 물을 포도주로 바꾼 기념 성당이 있다.” 그러면서 그는 “예수님께서 물을 포도주로 바꾼 물동이에 채웠던 물을 길러온 우물에 대해서 언급”하였다.

 

1551-64년에 보니파시오(Boniface) 신부는 이슬람에 의해 폐허가 된 교회를 발견 하였고, 이슬람 신자들이 순례자들에게 기적의 장소였던 곳을 보여 주었다고 전하고 있다.

 

오늘날 복음에서 언급하고 있는 카나라는 지명은 두 곳이 있다. 키르벳 카나(Khirbet Qana)와 케페르 카나(Kefer Kana) 마을이다. 키르벳 카나는 세포리스(Seforis) 북쪽에 있는 나자렛에서 13km 떨어진 외딴 언덕 꼭대기에 폐허로 남아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는 무덤과 지하 유골 안치소 등 중세기의 흔적들이 발굴 되었지만 근처에 우물은 발견되지 않았다.

 

반면 케페르 카나는 나자렛에서 북동쪽으로 6km 떨어진 갈릴래아 호수 티베리아로 내려가는 754번 지방도로 변에 놓여 있는 현재는 작지 않은 규모의 지방 도시이다. 1881년 프란치스칸들에 의해 세워진 카나의 첫 기적 기념 성당은 마을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다. 이 마을의 서쪽에서 로마인들의 무덤과 함께 우물이 발견 되었다. 

 

프란치스칸들은 1641년에 케페르 카나의 유적지를 사려고 노력하였으나 거의 200년이 지난 1879년 다마스커스 통치자의 도움으로 겨우 획득 할 수 있었다(이미 그리스 정교회는 1566년 카나에 기념 성당을 지었다).  이 시기에 프란치스칸들은 폐허가 된 유적지 근처에 있는 아랍 집에서 살고 있었다. 1881년에 프란치스칸 기념성당이 봉헌되었고 1901년에 성당을 보수하면서 현재의 성당 정면이 만들어졌다. 1997년 가을에 성당을 보수하면서 대대적인 고고학 발굴 작업이 실시되었고, 초세기 유대교 시나고가와 그리스도인들의 무덤 그리고 5세기경의 아람어 모자이크 등이 발굴되었다.

 

현재의 성당은 대희년을 맞이하던 2000년에 아랍 본당과 성지 기념성당으로 재건축 된 것이다.

   


 

혼인잔치

 

일반적으로 혼인 예식은 두 단계에 걸쳐서 행해졌다. 제1 단계는 배우자들 간의 결혼 동의가 증인 앞에서 행해지는 약혼식이다. 약혼은 혼인이 법적으로 성립되는 첫 단계이다. 신부의 아버지 집에서 이루어지는 약혼잔치 동안 신랑과 증인은 준비된 서약서에 서명한다. 이 서약서에는 신부에 대한 신랑의 경제·사회적 책임이 규정되어 있다. 약혼식이 끝난 후 신랑과 신부는 1년 정도 떨어져서 각자의 집에서 지낸다(마태 1,18참조). 신부가 너무 어리면(열두 살 정도에 약혼했다) 결혼을 몇 년 더 연기할 수 있었다. 어떤 경우라도 신부가 의복과 보석을 준비할 수 있도록 최소한 열두 달의 준비기간을 주었고, 남편은 이 기간 동안 집을 마련하고 혼인 잔치를 준비했다.

제2 단계는 신부가 신랑을 맞이하고 신랑이 신부를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가는 예식이다(마태 1,24-25 참조). 보통 혼례는 저녁에 치렀는데, 신부는 축제 분위기 아래 횃불을 든 행렬에 둘러싸여 신랑 집으로 간다. “그때에 하늘나라는 저마다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에 비길 수 있을 것이다”(마태 25,1)라는 예수님의 비유는 이러한 관습을 반영한 것이다. 이 예식을 거행함으로써 합법적이고 정상적인 결혼 생활로 들어가게 된다. 결혼식이 거행되는 날 신랑은 부모 형제 친척들 그리고 친구들과 함께 신부의 집으로 간다. 이 때 신부의 친구들은 신랑에게로 나아가 신랑을 영접한다. 신부는 집에서 자기를 맞이할 신랑을 기다린다. 신랑이 도착하면 신부의 아버지는 신랑과 신부에게 축복을 빈다. 그 후 신부는 작별 인사를 나누고 신랑의 집으로 간다. 신랑의 집에서 결혼 축하객들이 모인 가운데 화려한 결혼 잔치가 열린다.

신랑과 신부는 미리 목욕을 하고 향유를 바른 뒤 특별히 그날을 위해 아껴둔 가장 아름다운 옷으로 치장한다. 손님들도 가장 좋은 옷으로 단장했다. 적절한 예복을 차려입지 않은 것은 모욕으로 간주되었으며(마태 22,11-13 참조), 묵시록에서는 거룩한 도성 새 예루살렘이 “신랑을 위하여 단장한 신부처럼 차리고”(묵시 21,2)라는 말로 아름답게 단장한 모습으로 표현 하였다.

가족과 이웃이 모두 집 안이나 안뜰에 들어오면 식사가 시작되는데 손님들은 식사하기 전에 정결례로 손을 씻었다. 이 관습이 카나의 혼인잔치에 묘사되어 있다. “유다인들의 정결례에 쓰는 돌로 된 물독 여섯 개가 놓여 있었는데, 모두 두세 동이들이였다”(요한 2,6). 식사 때 사람들은 마음껏 포도주를 떠서 마셨다. 식사를 하는 동안 사람들은 시를 낭독하거나 축가를 부르며 신혼부부에게 선물을 건넸다. 이런 향연은 신부가 처녀일 경우는 1주간, 과부일 경우는 3일간 지속된다. 축하객들은 매일 바뀌게 된다. 그러나 신부를 동반하고 온 축하객들은 결혼 잔치가 끝날 때까지 계속 머무른다. 이렇게 오랫동안 향연이 계속되기 때문에 잔치 도중에 음식이나 술이 떨어지는 일이 흔히 있을 수 있다. 예수님과 제자들 그리고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혼인 잔치에 참석했을 때 포도주가 떨어졌다. 이 사실을 어머니 마리아는 예수에게 알렸고 그리하여 예수님은 물로 포도주를 만드는 기적을 행하였던 것이다.

 

나자렛 일릿에서 카나를 내려다 본 카나 마을 전경

 

기념 성당은  화살표 아래,                 사진 중간 부분 정원수가 있는 부분에 있다. 정원수가 있는 곳이 정교회 기념성당이고, 바로 옆에 프란치스칸 기념 성당이 있다.

 

나자렛에서 카나로 가는 754번 국도

 

나자렛 성모영보 대성당에서 22번을 타면 카나에 간다.

 

 

 

 

 

  

카나의 첫 기적 성당 골목에서 찍은 사진

 

카나의 첫 기적 성당으로 들어가는 골목길...정교회 기념 성당 방향에서...왼쪽은 요한 복음 첫 기적 내용을 타일에 구워 영어로 장식을 했는데...부수고...낙서하고...지우고...불행스럽게게 이곳도 아랍마을...

 

기념성당 출입문을 장식한 포도송이

 

기념성당 정면...

 

 

 

카나의 혼인잔치 성당이자...프란치스칸 수도원...라틴 아랍 본당...

 

기념성당 내부

 

 

기념성당 제대

 

제대 뒤에는 여섯개의 물 항아리로 장식되어 있다...

 

 

 

 

 

 

 

혼인잔치에서 성모님과 예수님...

 

포도송이로 장식된 제대 받침

 

제대 위 쿠뽈라

 

 

 

 

 

 

나자렛의 성가정 성화

 

프란치스코 성인

 

성당 입구 오른쪽에 있는 바르톨로메오 사도 상...전승에 의하면 혼인잔치의 주인공인 신랑은 바르톨로메오 사도였다고...

 

카나의 혼인잔치 성당의 제의실 내부...물 항아리가 인상적...

 

 

 

고고학 발굴 유적들...

 

기념성당에서 고고학 발굴을 한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

 

 

 

 

 

 

 

 

  

여기에서 4세기의 유대인 아람어 비문이 발견 되었는데, “이 모자이크를 만든 그의 아들들, 부탑의 아들, 탄훔의 아들, 요셉을 기억하는 이에게 축복이 있기를! 그들에게 하느님의 축복이 있기를, 아멘!” 이라고 쓰여 있다. 안뜰을 장식했던 모자이크 바닥의 일부분이다.

 

성당을 들어가면 중간쯤...오른쪽 계단으로 내려가는 문쪽에 있다.

 

 

성당 출입문쪽을 향하여...

 

경당 제대...

 

 

카나의 기념성당 마당에서 바라본 그리스 정교회의 카나의 기념 성당...좁은 골목을 사이로 마주하고 있다.

 

754번 큰 도로에서 카나의 기념 성당으로 들어가는 골목 오른쪽에 있는 바르톨로메오 사도 기념 성당. 바르톨로메오 사도는 카나 출신이며, 혼인잔치의 신랑이었다고 한다.

 

 

 


 

프란치스칸들이 카나의 첫 기적 성당을 1881년에 짓기 훨씬 이전인 1566년 그리스 정교회에서는 이미 카나에 기념 성당을 지었고, 예수님의 기적과 관련된 항아리 두 개를 보관하고 있다. 이스라엘 성지순례를 하다보면 예수님의 흔적이 있는 주요 장소에는 그리스 정교회와 프란치스칸 성당이 함께 있다. 예수님 무덤 성당이나 베들레헴, 성모님 무덤과 예수님 승천경당처럼 장소가 명확한 곳에서는 장소를 나눌 수 없기 때문에 시간으로 나누어 사용하지만(성모님 무덤 성당에 대한 권리는 정교회에 완전히 빼앗겼고, 승천경당은 이슬람에게 권리를 빼앗겨 승천 대축일 당일만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 그 외 오랜동안 이슬람의 통치하에 폐허로 남아 있다가 재건된 성당의 경우는 카나처럼 인근에 서로 기념 성당을 가지고 있다. 

 

프란치스칸 기념 성당에서 약 50m 정도 더 들어가면 오른쪽에 정문이 있다.

 

정문을 들어서서...안쪽에 문이 보이는 곳이 정교회 성당 문

 

대문 옆 이콘 성화상

 

대문을 들어서서 오른쪽에 있는 천상 혼인잔치와...카나의 첫 기적 이콘

 

여섯개 물 항아리에 물을...

 

 

 

성당 마당에 있는 세례대...

 

세례대 성수반...

 

세례대 성수반 위 천장...예수 그리스도와 열두 사도들...그리고 천사들...

 

 

 

 

 

정교회 수도원 건물

 

수도원 건물 내부...

 

그리스 정교회 종탑...

 

우리나라 절에서 목어를 타종하듯 성지 이스라엘에 있는 정교회에서는 아직도 나무로 된 종을 타종하는데 이것은 이슬람이 통치할 때 쇠로 된 종을 울리지 못하게 한 슬픈 역사를...신앙의 자유를 빼앗겼던 시절을...

 

그리스 정교회 성당 옆에서 바라본 프란치스칸 첫 기적 기념 성당의 모습...바로 지척에...

 

 

 예수님께서는 처음으로 갈릴래아 카나에서

표징을 일으키시어,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셨다.

  (요한 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