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순례 준비는 어떻게?

지도 신부 없이 신자들만 순례하는것에 대해

테오필로 2010. 5. 1. 02:33

 

지도 신부 없이 순례자들만 순례하는것에 대해

 

요즘 들어 우리 가톨릭 신자 성지순례자들도 영적 지도 신부 없이 순례자들만(개인 배낭 순례자들이 아닌 단체 순례자들) 달랑 오는 경우를 자주 목격하게 됩니다. 여러 가지 사정이야 있겠지만 그들의 모습을 보면 연민의 정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신자들만이 오는 성지순례 팀들을 보면 가장 중요한 무언가가 빠져 있는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습니다. 마치 잔칫집에 포도주(술)가 빠진 것과 같은, 마치 신랑이 빠진 신혼여행처럼 가장 중요한 알맹이가 빠져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선 성지순례가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하는 신자들의 무지에서 생기는 현상이라고 보입니다. 성지순례를 계획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장소와 일정 그리고 순례 비용이겠지만 그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영적 지도를 해 주시고 성지에서 기념 미사를 봉헌할 수 있는 신부와 함께 하는지를 확인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잘 알고 있을 성지순례 여행사가 신자들로만 구성해서 성지순례를 온다는 것은 신자들의 신앙의 유익을 고려하지 않은 순례를 계획한 것이고, 순례 여행사로서의 소명의식이 결핍되었다고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그 중 사목자를 초대하여 순례할 수 있는 여력이 있는 신앙의 공동체가 달랑 신자들만이 온 경우를 보면 과연 우리가 믿고 고백하는 신앙이 무엇인지, 평생 단 한 번의 성지 순례를 하면서 편리함이나 경제적인 판단으로 모든 것을 너무 간과하고 있지는 않은지 되새기게 합니다.

 

평생 한번 할 수 있는 성지 순례인데 전례를 거행하고 영적인 지도를 할 수 있는 신부 없이 여느 관광지처럼 여기는 순례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성지 이스라엘은 다른 일반 성지들하고는 비교할 수 없는 특별히 구별된 장소입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전 생애와 관련 된 바로 '이 곳'이라는 특수성 때문입니다.

 

우리들이 목자를 이야기 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은 노예생활에서 기나긴 광야의 여정을 거쳐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했던 모세가 대표적입니다.

그리고 구원자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요한복음에서 누누이 강조하는 목자와 양의 관계로 양은 참 목자를 떠나서는 한 순간도 살아갈 수 없는 가련한 존재일 뿐 아니라 착한 목자로 인하여 우리들은 천사들보다도 더욱더 축복받은 존재가 되기도 합니다.

 

구세사를 이끌었던 목자들의 공통점은 신앙의 인도자라는 데에 있습니다. 연약한 양들이 어둠속을 걷지 않고 바른 길로 걸어가게 하는, 양들을 위해 자기 목숨을 내어놓는 참 목자(요한 10,11)일뿐 아니라 진리를 깨우쳐 주는 바른 길의 인도자라는 것입니다(신명 1,5; 느헤 8,8; 루카 24,27; 사도 11,4; 17,3 등 참조).

 

“누가 나를 이끌어 주지 않으면 내가 어떻게 알아들을 수 있겠습니까?”(사도 8,31)라고 고백하며 자기 곁에 앉기를 청했던 에티오피아 내시처럼 우리들의 순례 여정에는 목자가 필요합니다.

 

영적 지도 신부 없는 성지 순례는 빵점이라고 이야기 하는 이유는 목자와 양과의 관계에서만이 아닙니다.

 

우리 가톨릭교회는 ‘성사의 교회’입니다. 주님이신 하느님께서는 우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들을 통하여 당신의 사랑을 보고 느낄 수 있도록 끊임없는 사랑의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교리적으로 이야기 하면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사랑을 눈에 보이는 예식으로 표현하는 것’이 성사입니다.

 

특별히 성사를 언급하는 것은 성지순례를 하면서 순례자들이‘매일미사’를 하는 것으로 만족해하는 모습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전례주년을 태어나게 했던 성지의 바로 그 장소에서 전례주년에 따른 매일 미사를 한다는 것은 전례주년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 됩니다.

교회는 신자들이 신앙의 신비를 더욱 더 잘 깨달을 수 있도록 절기의 순환에 따라 주님의 축제들을 더욱더 장엄하게 드러내도록 배려하였습니다. 주님이신 예수님의 전 생애를 3년 주기인 전례주년으로 지정하여 거행하고 있는 것이 매일미사입니다.

 

순례자들이 성지 이스라엘에서 드리는 미사는 ‘매일미사’가 아닙니다. 성지 이스라엘은 주님의 전 생애를 기념하는 장소입니다. 구원의 역사가 이루어졌던 바로 그 장소에서, 예수님께서 직접 말씀을 선포하셨던 바로 그 장소에서 사제의 입을 통하여 ‘예수님의 그 말씀’을 직접 듣게 되는 것이 바로 성지에서 봉헌하는 미사의 의미입니다. 순례자들은 사제를 통해서 2000여 년 전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들려주었던 바로 그 복음의 말씀을 ‘지금 그 자리에서’직접 듣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선포하셨던 그 말씀을 이제 사제를 통하여 바로 ‘그 자리’에서 당신의 백성들에게 선포될 때 신자들은 사제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직접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지 이스라엘만이 가질 수 있는 전례의 특수성입니다.

성지 이스라엘에서 유별나게 강조되는 것은 ‘바로 이 장소’라는 공간이 갖는 탁월성입니다. 그 탁월성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것이 전례이며 그 구원의 기쁨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것이 각 장소에 대한 장엄 전례인 대축일 미사가 됩니다.

시간적인 제약 때문에 예수님의 삶과 죽음과 부활을 차례대로 묵상할 수 없을지라도 주어진 시공간 안에서 예수님의 전 생애 즉 예수님의 탄생과 공생활과 수난과 부활을 아우르는 신앙의 신비를 묵상하고 체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성지 순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곳저곳 많은 곳들을 보는 것이 아니라 구원의 장소인‘바로 그곳’에서 드리는 기도와 묵상이며, 이것이 가장 잘 표현 되는 것이 모든 신심행위를 포함한 전례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구름같이 몰려드는 사람들에게 물었습니다. “너희는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광야냐?, 갈대냐?, 고운 옷을 입은 사람이냐?”세례자 요한은 이 모든 것이 아니라고 이야기 합니다. 너희들이 보려고 했던 것, 찾고자 하는 것은 예언자(루카 7,24-26)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지 순례를 통해서 찾고자 하는 것, 보려고 하는 것은 다른 외적인 것들이 아니라 ‘말씀이신 하느님’입니다. 구원의 역사가 이루어졌던 ‘바로 그곳’에서 예언자를 통해서 볼 수 있는 것은 ‘말씀’뿐입니다. 그 말씀은 성사인 전례 안에서 사제를 통해 보고 들을 수 있으며 그때 우리는 그 말씀들을 우리들의 가슴에 새길 수 있게 됩니다.

 

요즘 각 교구에서 부제들이나 서품을 받은 새 사제들이 성지순례를 하고 있는 것은 매우 좋은 현상입니다. 이 새 사제들이 나중에 본당에 가게 되면 신자들과 성지순례를 하면서 보다 나은 앎의 조건에서 순례자들을 인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사제들 중에 성지순례를 하지 못하신 분들도 많을 것입니다. 여건이 된다면 주님의 땅을 아직도 밟아 보지 못한 사제들을 모시고 함께 순례의 여정을 걷는 것은 어떨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