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자렛

나자렛 : 역사적 배경과 성모영보 동굴 및 1층 성당

테오필로 2007. 1. 19. 06:23

나자렛은 히브리어의 ‘수호자’ 또는 ‘파수꾼’을 의미하는 ‘나자르’에서 연유하는 것으로 예루살렘에서 137km,  갈릴래아의 티베리아에서 29km, 하이파에서 41km 떨어진 곳으로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골짜기이다.


청동기 시대인 기원 전 3000-2000년 전부터 사람들이 살고 있었던 곳이기는 하지만, 역사적으로 잘 알려져 있지 않았던 곳이다. 그래서 나자렛은 구약성서에 단 한 번도 언급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탈무드나 유대의 역사학자 요세푸스 플라비우스의 기록에도 전혀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필립보가 나타나엘을 만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고 예언자들도 기록한 분을 만났소. 나자렛 출신으로 요셉의 아들 예수라는 분이오”라고 하자 나타나엘은 필립보에게 “나자렛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올 수 있겠소?”하고 반문하며 의아해 했다는 요한복음사가의 이야기를(요한 1,45-46참조) 이해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유다지방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셨지만 복음사가들은 예수님을 “나자렛 사람”(마태 2,23) 이라고 부른다. 복음서를 살펴보면 “나자렛 사람 예수”(마태 26,71; 마르 14,67; 마르 16,6), “나자렛 사람 예수님”(마르 1,24; 10,47; 루가 18,37; 루가 24,19; 요한 18,5; 요한 18,7; 요한 19,19), “나자렛 출신 예언자 예수님”(마태 21,11) 그리고 “나자렛 출신 요셉의 아들 예수” (요한 1,45) 등이다. 특별히 십자가 위의 명패에는 “유다인들의 임금 나자렛 사람 예수”(INRI = Iesus Nazarenus Rex Iudaeorum)라고 쓰여 있었다.


나자렛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구원의 역사가 시작된 곳이기 때문이다. 헤로데 대왕 시절 요셉과 약혼한 마리아가 이곳에 살고 있었다(마태 1,18―2,23; 루가 1,26-27; 2,4 참조). 그리고 헤로데가 죽자 이집트에서 돌아온 아기 예수님과 함께 마리아와 요셉이 성가정을 이루어 살던 곳이다(마태 2,19-23; 루가 2,39-52).


성모 영보 기념 대 성당은 마리아의 집터였다고 하는 곳에 1960년부터 짓기 시작하여 1969년에 완성된 것인데, 그 자리에 세워진 다섯 번째 교회이다. 5세기 초에 성모 영보가 있었던 동굴 위에 작은 경당이 세워졌으나, 614년에 페르시아 군인들에게 파괴되었다. 그 후 십자군 시대에 큰 규모의 성전이 지어졌으나 다시 1263년에 이슬람들에 의해 파고 되었고, 1632년, 1730년, 1877년, 1969년에 성전이 지어지지만 지진과 전쟁등으로 파괴 되었으며 현재의 성모영보 대성전은 1969년 3월 24일 가로데(Garrone) 추기경에 의해 축성 되었다.


성모영보 대성전이 자리하고 있는 이곳은 1954년부터 11년간에 걸친 고고학 발굴을 통해서 수많은 동굴과 물 저장소, 곡식 저장소, 기름틀 뿐만 아니라 비잔틴 시대의 성전터도 찾아냈다. 현재의 성모 영보 동굴은 헤로데 시대에 속하는 가정집으로 마리아가 살았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이 곳에서는 3세기경에 해당하는 시나고가 건물의 일부도 발견 되었는데 기둥에는 희랍어로 “마리아, 찬미 받으소서”(XE MAPIA)라고 새겨진 돌기둥을 발견함으로써 마리아에게 봉헌된 경당이었을 것으로 확신하게 되었다.


670년의 순례기록에는 “이 성전이 세워진 곳은 마리아가 거처했던 곳으로서 주의 천사가 마리아에게 나타나 아기 예수의 탄생을 알린 곳이다”고 전하고 있다. 이런 전통에 의해서 동굴 안에 위치한 중앙 제대에는 라틴어로 “VERBUM CARO HIC FACTUM EST”라고 쓰여 있는데 “이곳에서 말씀이 육이 되셨다”는 뜻이다.

 

1층 성당 안에 반 지하 형태의 계단을 내려가면 있는것이 "성모영보 동굴"

 

 

성모영보 동굴에서 미사를 집전하고 있는 주교단...

 

 

2층 성당에서 내려다 본 성모영보 둥굴...

 

 

 

 

 

 

 

 

 

 

사진 중앙쪽에 있는 큰 문이 있는 곳이 성당 출입구쪽...사진에 보이는 자매가 바라보고 기도하고 있는 곳이 성모영보 동굴...

 

 

2층 중앙성당에서 1층에 있는 성모영보 동굴을 볼 수 있도록 설계됨...

 

성모영보 동굴의 제대...라틴어는 "말씀이 이곳에서 육(사람)이 되셨다"는 뜻...

 

 

 

 

 

 

 

 

성모영보 동굴 앞쪽에 있는 1층 중앙 제대

 

 

이전 성당 성모영보 동굴에 모셔졌던 성화...지금은 1층 소경당 제대 위쪽에...

 

 

성모영보 동굴로 내려가기 전에 십자군 시대의 교회가 있던 자리 위에 3개의 경당을 볼 수 있는데 중앙에 있는 제대의 다미아노 십자가처럼 생긴 십자가와 함께 제대는 유대인 작가인 벤 샬롬(Ben Shalom)의 작품이다.

 

 

 

제의실쪽으로 나 있는 제대는 마리아의 부모인 요아킴과 안나에게 봉헌된 제대이다.

 

제대 왼쪽 벽에 있는 성녀 안나상

 

제대 오른쪽에 있는 성 요아킴상

 

 

1층성당 중앙에 있는 제대 근처에 있는데...5세기의 유물로 세례 예식을 거행하던 곳으로 1951년 발굴. 유대-그리스도인들의 성전이었던 곳

 

비잔틴 시대의 유물...

 

 

 

비잔틴 시대의 유물

 

현재의 성당은 십자군 시대에 지어진 성당 위에 같은 규모 위에 지어졌다고 하는데...볼록하게 튀어나온 돌 기둥은 십자군 시대에 지어진 성당의 유물...

 

 

비잔틴 시대의 경당 자리였다고...

 

 

 

오른쪽의 새로운 계단...왼쪽에 있는 계단은 십자군 시대에 지어진 성당 계단...

 

십자군 시대의 둥굴 양옆에 있었던 기둥의 흔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