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

통곡의 벽 - 서쪽 벽 [Wailing Wall or Western Wall]

테오필로 2006. 11. 11. 18:45
 

"통곡의 벽"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하여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간략한 역사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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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루살렘은 기원전부터 지금까지 약 3000년의 역사 동안 포위되고, 방어되고, 정복당하고, 파괴 되었다가 다시 건축되기를 40차례...3000년의 역사를 지닌 예루살렘을 유대인과 그리스도교와 무슬림의 시대로 각각 나눈다면, 유대인이 지배하던 시기가 약 550년, 그리스도교는 약 400년 그리고 무슬림이 통치하던 기간이 약 1200년 그리고 그 나머지는 외세가 다스렸다고 볼 수 있다.


- 기원전 1천년경 다윗은 예부스인들에게서 이곳을 빼앗고 나서 이스라엘인들은 두 세대 동안 그 산상의 도성에서 민족적, 종교적 번영을 누렸다. 제1성전은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 건축하여 기원전 957년에 완공했다. 제1성전은 계약궤를 안치하고 백성 전체가 모이는 장소로 건축했다. 지성소 안에는 올리브 나무로 만든 두 '거룹'이 계약궤와 함께 서 있었다. 지성소는 '신의 임재'(Shekhina)가 일어나는 자리로 여겨졌고, 대사제가 욤 키푸르(대속죄일)에만 들어갈 수 있었다.


- 다윗의 아들 솔로몬 왕이 죽고 나자 갓 태어난 통일왕국 이스라엘은 둘로 갈라지고 말았다. 그 후 이 성전은 바빌로니아의 네부카드네자르(느부갓네살) 2세에게 수모를 당했는데, 그는 기원전 604년과 597년에 성전 보물들을 노략해갔고, 기원전 586년 '아브' 달 9일에는 성전을 파괴해버렸다. 그리고 유대인들은 그들의 도성에서 쫓겨나고 유배 되었다. 애가서는 예루살렘 및 성전의 상실을 애도하기 위해 대중들 앞에서 암송되도록 쓰여졌는데, 당시의 상황을 가장 정확하면서도 절절하게 묘사하고 있다. “내 백성의 수도가 이렇게 망하다니, 울다 지쳐 눈앞에 아득하고 애가 끊어지는 것 같구나. 아이들, 젖먹이들이 성안 길목에서 기절하는 모습을 보니 창자가 터져 땅에 쏟아지는 것 같구나. 먹고 마실것을 달라고 어미에게 조르다가, 성안 광장에서 부상병처럼 맥이 빠져 어미 품에서 숨져갔구나.”(애가 2,11-12)


- 페르시아 아카이메니아 왕조의 창시자이자 바빌로니아 정복자인 키루스(고레스) 2세는 기원전 538년 칙령을 내려 포로로 잡혀온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성전을 재건하도록 허락했다. 성전 재건 작업은 기원전 515년에 끝났다. 그러나 경제적으로 미약했던 유대의 귀향인들은 성전에 솔로몬이 했던것 처럼 같은 화려한 장식을 할 여유가 없었다. 성전의 옛 모습을 기억하던 몇몇 사람들은 새 건물을 보고는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 페르시아·헬레니즘 시대(기원전 4~3세기)에 이민족 군주들은 성전을 대체로 존중했으나, 안티오코스 4세 에피파네스는 기원전 168년 제단에서 제우스에게 제사를 드림으로써 하스모니아가의 반란을 촉발시켰으며, 반란이 진행되는 동안 유다 마카베오는 성전을 정화하고 다시 봉헌했다. 

- 예루살렘을 탈환하고 하스모니아 왕조를 세웠지만 왕조의 정통성은 취약했고(다윗 왕가의 후손들이 아니었고, 사독 가문의 제사장 출신도 아니었음) 여러 종파간의 갈등과 대립으로 혼란에 빠졌고, 급기야 기원전 63년 로마의 폼페이우스에 의해 정복 되었다.


- 로마정복 당시에 유대 왕이었던 헤로데 대왕(기원전 37~4)은 제2성전을 재건하기 시작하였다. 재건 작업은 기원전 20년에 시작하여 서기 64년에 완성 되었다. 성소 서쪽 끝은 지성소였다(이곳이 현재의 통곡의 벽과 마주하고 있다). 헤로데 성전은 다시 한번 이스라엘 민족생활의 중심이 되었다. 헤로데 성전은 종교의식의 중심지일 뿐만 아니라, 성서 및 그외 민족 문학 자료들을 보관하는 곳이기도 했고, 로마 시대에 유대인 최고법정이었던 산헤드린의 집회소이기도 했다.

- 66년에 시작된 로마에 대한 반란은 곧 성전을 중심으로 전개되었으며, 서기 70년 티투스(Titus)가 이끄는 로마군에 의해 예루살렘 성전은 완전히 타서 재만 남고 말았다. 유태인들의 전승에 의하면 그날은 히브리 달력으로 아브(8월) 달의 9일째 되는 날로서 바로 기원전 586년에 솔로몬의 성전이 바빌로니아인들에 의해 불타 없어진 그 날이었다.


- 132년에 '별의 아들‘이라는 별병을 가진 바르 코크바(Bar Kokhba)에 의해 주도된 반란은 황제 하드리아누스에 의해 진압되고 유대인들은 다시 예루살렘에서 추방되었다. 1년에 딱 한번 히브리 달력으로 아브 달 9일에 성전의 파괴를 애도한다는 목적으로만 입성이 허락되었다.


- 서쪽 벽(통곡의 벽)은 서기 70년 로마인들에게 파괴된 예루살렘 제2성전 가운데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유일한 유적지이고 마지막 유적지이기 때문에 비잔틴 시대부터 지금까지 유대인들의 희망과 순례의 중심이 되고 있다.(유대인들에게 민족의 단결 및 구원의 상징으로 비추어지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말) 오스만 터키 시대부터 이스라엘은 물론 전세계에 흩어진 유대인들이 이곳에 순례차 와서 소원이 적힌 쪽지를 벽의 돌 틈새에 끼워 가며 기도를 하였다.


- 오늘날 이 벽은 691년 이슬람교도들이 세운 ‘바위 돔 사원’(Dome of the Rock)과 '알 아크사 모스크'(al-Aq Mosque)를 둘러싼 담벽과 마주하는 일부로 1948년 이스라엘의 독립시에는 요르단의 관할이었다가 1967년 6월전쟁 때 옛 예루살렘 시를 점령함으로써 1800년 만에 처음으로 예루살렘 전체를 유대인들이 관할하게 되었다. 이 유적지의 신빙성은 전승·역사·고고학 등으로 확증되어 왔다. 오늘날 모습대로는 길이 50m, 높이 18m가량 되지만, 땅속으로 훨씬 더 깊이 들어가 있다.


- 이곳은 이스라엘 민족의 정신적.종교적인 최고의 성지이기에 이스라엘 군인의 삼엄한 소지품  검문을 통과해야 한다. 통곡의 벽은 두지역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북쪽은 남자들이, 그리고 남쪽은 여자들이 기도하는 장소이다.

 

- 이곳에 들어가는 모든 남자들은 키파(머리를 가리는 것은 하느님을 경배한다는 의미-주교님들이 쓰는 빨강 calotta와 같은 크기와 모양)라고 하는 조그만 모자로 머리를 가려야 한다. 여자는 어깨와 무릎이 드러나지 않도록 가려야 한다.매일 24시간 개방되어 있지만 매주 금요일 오후에 시작되는 안식일 이후부터는 유대인들이 가장 많이 모여드는 시간이라 이때만은 사진 촬영이 금지된다.

 

덩게이트(오물 성문) 앞 도로에서 통곡의 벽을 가리키는 표지판

 

덩게이트(오물성문)을 들어서면 앞에 검문검색하는 곳을 통과 해야 함...

 

통곡의 벽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검문검색을 통과해야 한다. X검사와 가방검사...

황금 바위돔 사원을 배경으로...숲이 우거진쪽이 통곡의 벽임.

 

통곡의 벽 오른쪽...오른쪽으론 덩게이트(오물 성문) 출구. 앞에 보이는 것은 바위돔 사원으로 들어가는 입구임.

 

 

앞에 가로놓여 있는 것이 통곡의 벽

 

통곡의 벽에서 만난 정통 유대인 소년

 

통곡의 벽 앞의 광장에는 책상들이 놓여있고, 책상 위에는 성서들이 놓여 있음...율법책...

 

통곡의 벽에서 기도하는 유대인들...상체를 앞뒤로 흔들며 기도...예전에 서당에서 천자문 외우면서 앞뒤로 몸을 흔들듯이...

 

큰 바위들이 헤로데 시대의 제2성전의 유물들임...

 

바위틈에 끼워져 있는 기도문들...

 

흐느끼며 기도하고...율법을 읽고...

 

 

검은 옷의...정통파 유대인들...이들의 정식 복장은 검정색 옷과 모자...양쪽 귀쪽의 머리는 자르지 않고 기르고...양쪽 허리에는 흰 실을 늘어트리고...

 

 

통곡의 벽에 들어가는 왼쪽에...성구갑을 부착하는 방법을 안내하는 정통파 유대인들...

 

 

예수님께서 바리사이들을 질책하시며 말씀하신 "성구갑" 기억 나시지요?  "그들이 하는 일이란 모두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다. 성구갑을 넓게 만들고 옷자락 술을 길게 늘인다"(마태 23,5)

성구갑(Tefillin)이란 양피지에다 구약성경 구절들(출애 3,1-16; 신명 6,4-9; 11,13-21)을 적어서 역시 양피지로 만든 작은 성냥갑 크기의 통에 넣은 것입니다.. 성구갑은 이마와 왼팔 윗 부분에 질끈 졸라매는데(신명 6,8; 11,18; 출애 13,16). 머리로는 하느님과 하느님의 말씀을 늘 생각하고 마음으로는 하느님과 하느님의 말씀을 사랑하겠다는 신표입니다.

성구갑은 아침 해가 뜨고 난 다음 해가 질때까지 안식일과 욤키푸르 등의 축일을 제외하고 어느때라도 , 잠시라도 부착할 수 있으며, 영원하신 하느님과 연결시켜 준다고 합니다.

성구갑을 부착하면서 "우리에게 계명을 주시어 성구갑을 부착하도록 명하시고 우리를 거룩하게 하신 우주의 왕이신 전능하신 하느님(G-d, 하느님이라고 표시하지 않고, 영어의 God를 G-d로 기록했네요...거룩하신 분의 이름을 헛되이 부르지 말라는 계명에 따라...) 찬미받으소서." 라고 기도 합니다. 그리고 토라를 암송하기 전에 다시 "모든 민족들 중에서 우리를 선택하시고, 토라를 주신, 우주의 왕이신 주 하느님 찬미 받으소서." 하고 기도 합니다. (주님은 하느님 표기법과 같이 Lord 라고 표기하지 않고 L-rd라고 표기)

 

앞에 보이는게 바위돔 사원으로 들어가도록 만들어 놓은 입구이구요...

 

  

 

  통곡의 벽 맞은편 옥상에서...

 

광장에 책상들이 놓여 있는 곳이 남자들...오른쪽이 여자들...

 

가운데 칸막이로 남자, 여자들의 장소를 구분했습니다.

 

오른쪽의 여자들이 기도하는곳...

 

통곡의 벽 맞은편에서...숲이 있는 곳이 제2성전시대의 지성소의 자리...

 

 

중간의 통로를 따라 들어가면 바위돔 사원 내에 있는 '알 아크사 모스크'에... 오른쪽에 보이는 건물이 바로 알 아크사 모스크...이 사원이 실질적으로 예배하는 공간입니다.

 

중간에 동굴(?)이 보이지요...이곳으로 들어가면...마찬가지로 통곡의 벽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위 사진에서 사람들이 서 있는 곳으로 들어가면...안에 책장에 유대인들 성서가 가득하고...

 

누구나 성서를 꺼내 읽을 수 있게 비치하고 있습니다.

 

 

유대인 소년의 바지 옆구리에 하얀 실이 보이지요... 이것 또한 유대인들의 정통 복장의 한 요소인데...예수님께서 바리사이들을 질책하시면 하신 말씀중에..."옷단에는 기다란 술을 달고 다닌다"(마태 23,5)...정통파 유대인들은 웃옷 옷단에 청실 백실을 배배꼬아 만든 술을 네 곳에 매달고 다닙니다. 노상 하느님의 율법을 상기하겠다는 신표입니다.(민수 15,38-40; 신명 22,12)

 

성서를 읽으며...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밖의 통곡의 벽처럼 성서를 읽고...기도하고...

 

몸을 앞뒤로 흔들며 성서를 읽고 있는 정통파...사진이 흔들려 보이지요?

 

 이곳 통곡의 벽은 실내이기 때문에 비가오나 눈이오나 사시사철 24시간 내내 기도할 수 있는 곳입니다.

 

기도하고 있는 정통파 유대인 소년...

 

나즈막하게 흐느끼며 기도하는 이들의 모습에서 그들의 간절한 기도가 이루어지길 함께 염원하였습니다. 더 이상 슬픔도 울부짖음도 고통도 없는 그런 세상이 오기를...

나의 평화는 함께 살아가고 있는 나의 이웃들이 평화로울때 진정 평화로운 것이며, 나의 행복은 또한 나와 마주하고 있는 이들의 행복을 전제 할 때만이 의미있는 것임을...

 

                  ′이는 주님의 성전, 주님의 성전, 주님의 성전이다!′ 하는

                                 거짓된 말을 믿지 마라. (예레 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