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도보순례(Israel traking)

첫 번째 (2007.9.16-20)- 4.텔단(TelDan)에서 키럇 시모나(Kiryat Shmona)

테오필로 2008. 12. 2. 18:45

 

텔단(TelDan)

 

1. 주차장  2.텔단 숲으로 들어가는 출입구  3. 텔단(고대 신전자리)  4.고대 이스라엘 성문  5.가나안시대 유적

텔단 샘들을 둘러보는 짧은 코스는 대략 1시간 그리고 샘들과 텔단 유적지들을 모두 둘러보는데 걸리는 소요 시간은 2시간 30분 정도

 

성경의 나라 이스라엘을 생각하면서 메마르고 척박한 광야가 먼저 떠오르는 이들에게 '텔단'(Tel Dan)은 마치 에덴동산을 연상케 한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탈출 3,8)이 마치 이곳이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모든 것들이 풍요로워 보이는 곳이다. 헤르몬 산의 눈과 물이 모여 흘러나오는 샘들로 인하여 정글 숲을 연상하게끔 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고 이로 인해 숲속은 뜨거운 한 여름에도 14.5도를 유지할 만큼 시원한 곳이다.

 

텔단은 대략 260km의 요르단 강의 시발점이자 가장 큰 수원지이며 ‘요르단 강’의 어원이기도 하다. ‘요르단’이란 말은 ‘단에서 흐르다’, 즉 ‘단 지방에서 흘러내린다’는 뜻이다. 텔단은 예루살렘으로부터 약 223km, 티베리아로부터는 약 65km 북쪽에 있으며 레바논 국경 가까이에 있다.

 

‘텔단’은 고고학적인 용어인 ‘텔’과 지명인 ‘단’이 합성된 단어이다. 도시의 언덕들은 수 세기 동안 도시 위에 도시가 다시 지어지면서 형성된 언덕을 텔(tell)이라고 부르는데 셈어로 “고대 폐허의 흙무더기” 또는 “토총”을 의미한다. 이 언덕들은 동일한 장소에서 거주지들이 계속 건설되고 파괴되면서 만들어진 것이다. 도시가 파괴될 때 건물들이 무너지며 파편들이 또 다른 층을 이루어 그 언덕 위에 쌓이게 된다.

텔단의 발굴 작업은 1966년도에 이루어졌는데 성문과 벽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상적인 것은 성경에서 언급되는 예식의 장소들을 발굴해 낸 것이었다. 텔단에서 발견된 최초의 물품들은 기원 전 5천년경의 신석기시대의 도자기들이다. 최초의 텔 단은 기원전 2700년에서 2400년 사이에 정착된 가나안 초기 시대에 이루어졌다.

 

‘단’은 이스라엘 12지파 가운데 한 지파로 단 지파의 이름은 야곱(이스라엘이라고도 함)과 야곱의 두 번째 아내 라헬의 여종인 ‘빌하’를 통해 낳은 야곱의 다섯 번째 아들 이름을 딴 것이다.

창세 30,4-6 이렇게 해서 라헬이 야곱에게 자기의 몸종 빌하를 아내로 주자, 야곱이 그와 한자리에 들었다. 빌하가 임신하여 야곱에게 아들을 낳아 주었다. 라헬은 “하느님께서 내 권리를 되찾아 주셨구나. 그분께서는 내 호소도 들으셔서 나에게 아들을 주셨다네.” 하면서 그 이름을 단이라 하였다.

 

처음 단지파에게 분할된 땅은 베냐민 지파의 왼쪽 해안가 지역이었지만 필리스티인들과의 전쟁에서 패하여 분배 받은 땅을 포기하고 대신 북쪽으로 이동하여  라이스를 정복하였고 그곳을여 단이라고 하였다. 

 

 

오늘날의 텔단 지역은 구약성경에서 처음으로 등장할 때의 이름은 ‘라이스’였고, 이스라엘 지파에게 분배되지 않은 가나안 원주민들의 땅이었다. 그러나 지중해 해안 지역을 분배 받았던 단 지파 사람들이 필리스티인들과의 전쟁에서 패하여 분배 받은 땅을 포기하고 대신 북쪽으로 이동하여 이곳 라이스를 정복하였고 조상 단의 이름을 따서 ‘단’이라고 부른데서 도시의 유래를 찾을 수 있다(판관 18,1-31 참조).

판관 18,1-29 그 시대에는 이스라엘에 임금이 없었다. 단 지파는 그때까지도 이스라엘의 지파들 가운데에서 상속지를 얻지 못하였으므로, 바로 그 시대에 자기들이 살 곳을 찾고 있었다. 단의 자손들은 자기들의 씨족 전체에서 다섯 사람, 곧 초르아와 에스타올 출신의 용감한 사람 다섯에게, “가서 땅을 탐지해 보시오.” 하고 일러, 그들이 땅을 정탐하고 탐지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에프라임 산악 지방에 있는 미카의 집까지 이르러, 그곳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다. 미카의 집에 있을 때에 그들은 젊은 레위인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소리가 나는 곳으로 가서 그에게 물었다. “누가 그대를 이리 데려왔소? 여기에서 무슨 일을 하오? 그대는 이곳과 무슨 관계가 있소?” “미카가 이러저러하여 나를 고용하였소. 그래서 내가 그의 사제가 된 것이오.” 하고 그가 대답하자, 그들이 부탁하였다. “하느님께 여쭈어 보아 우리가 지금 가는 길이 성공할 것인지 알려 주시오.” 그 사제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평안히 가시오. 그대들이 가는 길은 바로 주님 앞에 펼쳐져 있소.” 그리하여 그 다섯 사람은 길을 떠나 라이스에 다다랐다. 그들은 그곳 백성이 시돈인들의 방식으로 태평스럽게 사는 모습을 보았다. 조용하고 태평하게 사는 그들의 땅에는, 무슨 일로 남을 부끄럽게 만드는 권세가도 없었다. 그들은 시돈인들과도 멀리 떨어져 있을뿐더러 누구와도 접촉이 없었다. 그들이 초르아와 에스타올로 친족들에게 돌아오자, 친족들이 그들에게 “어떻게 되었소?” 하고 물었다. 그들이 대답하였다. “자, 그들에게 올라갑시다. 우리가 그 땅을 보았는데 매우 좋습니다. 가만히 있을 때가 아닙니다. 망설이지 말고 길을 떠나 그곳으로 가서 그 땅을 차지합시다. 여러분은 태평하게 사는 백성에게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양쪽으로 드넓은 그 땅을 정녕 하느님께서 여러분의 손에 넘겨주셨습니다. 세상에 아쉬운 것이 하나도 없는 곳입니다.” 단 씨족 가운데에서 육백 명이 무장하고 초르아와 에스타올을 떠났다. 그들은 유다 땅에 있는 키르얏 여아림으로 올라가서 진을 쳤다. 그리하여 그곳을 오늘날까지 ‘단의 진영’이라고 하는데, 그곳은 키르얏 여아림 서쪽에 있다. 그들은 거기에서 에프라임 산악 지방을 가로질러 미카의 집까지 이르렀다. 라이스 땅을 정찰하러 갔던 그 다섯 사람이 친족들에게 말하였다. “여러분은 이 건물들 안에 에폿과 수호신들, 조각 신상과 주조 신상이 있다는 것을 알고 계시지요? 그러니 이제 알아서 하십시오.”

그러고 나서 그들은 방향을 틀어, 미카의 집에 있는 그 젊은 레위인의 거처로 가서 그에게 인사하였다. 무장한 단의 자손 육백 명은 그동안 대문 어귀에 서 있었다. 땅을 정찰하러 갔던 그 다섯 사람은 층계를 올라 집으로 들어가, 조각 신상과 에폿과 수호신들과 주조 신상을 꺼내 왔다. 사제는 무장한 육백 명과 함께 대문 어귀에 서 있었다. 그 사람들이 미카의 집으로 들어가서 조각 신상과 에폿과 수호신들과 주조 신상을 꺼내 오니, 사제가 그들에게 “무슨 짓을 하는 것입니까?” 하고 따졌다. 그들이 그에게 말하였다. “조용히 입을 다물고 우리를 따라나서시오. 그리고 우리에게 아버지와 사제가 되어 주시오. 한 집안의 사제가 되는 것이 좋소? 아니면 이스라엘의 한 지파, 한 씨족의 사제가 되는 것이 좋소?” 그러자 그 사제는 마음이 흐뭇해져, 에폿과 수호신들과 조각 신상을 가지고 그 무리 한가운데로 들어갔다. 그들은 비전투원들과 가축과 짐을 앞세우고 다시 길을 떠났다. 이렇게 하여 그들은 미카의 집에서 멀어져 갔다. 소집을 받은 미카의 이웃집 사람들이 단의 자손들을 바짝 뒤쫓아 갔다. 그들이 고함을 지르자 단의 자손들이 돌아서서 미카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기에 이렇게 사람들을 소집하였소?” 미카가 말하였다. “당신들은 내가 만든 나의 신을 가져가고 사제도 데려가고 있소. 이제 나에게 남은 것이 무엇이란 말이오? 그런데도 당신들은 나에게 ‘무슨 일이오?’ 하고 물을 수 있소?” 그러자 단의 자손들이 그에게 대답하였다. “아무 말 하지 마시오. 그러지 않으면 성질 급한 사람들이 당신들을 쳐서, 당신과 당신 집안 사람들이 목숨을 잃을 수가 있소.”

그러고 나서 단의 자손들은 제 길을 계속 가 버렸다. 미카는 그들이 자기보다 강한 것을 보고 돌아서서 집으로 갔다.

이렇게 그들은 미카가 만든 것과 그에게 딸린 사제를 데리고 라이스로, 조용하고 태평하게 사는 백성에게 가서, 그들을 칼로 쳐 죽이고 그 성읍을 불살라 버렸다. 벳 르홉에 딸린 골짜기에 자리잡은 라이스는, 시돈에서 멀리 떨어져 있을뿐더러 누구와도 접촉이 없었기 때문에, 구해 주는 자가 아무도 없었다. 그리하여 단의 자손들은 성읍을 다시 세우고 그곳에서 살았다. 그리고 그 성읍의 이름을 이스라엘에게서 태어난 자기들의 조상 단의 이름을 따서 단이라고 지었다. 그 성읍의 이전 이름은 라이스였다.

 

모세가 죽은 뒤 이스라엘 백성은 여호수아의 인도를 받아 약속의 땅으로 들어갔고, 여호수아는 영토를 12지파에게 나누어 주었다. 단 지파는 지파 분배시 필리스티아인들과 인접한 예루살렘 서쪽 해양 평야지대를 분배받았다.

여호19, 40-48 일곱 번째로, 씨족별로 나뉜 단 지파 자손들을 위한 제비가 나왔다. 그들이 상속 재산으로 받은 영토 안에는 초르아, 에스타올, 이르 세메스, 사알라삔, 아얄론, 이틀라, 엘론, 팀나, 에크론, 엘트케, 기브톤, 바알랏, 여훗, 브네 브락, 갓 림몬, 메 야르콘, 라콘, 그리고 야포 맞은쪽 지역이 들어 있다. 그러나 단의 자손들은 자기들의 영토를 잃어버리게 되었다. 그래서 그들은 레셈으로 올라가 싸워서 그곳을 점령하였다. 그곳을 칼로 쳐서 차지하고 그곳에 살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레셈을 자기들의 조상 단의 이름을 따서 단이라고 하였다. 이것이 단 자손 지파가 씨족별 상속 재산으로 받은 성읍들과 거기에 딸린 촌락들이다.

 

단 지파의 위대한 영웅은 삼손이다. 그러나 삼손과 같은 위대한 판관이 등장하였을 때는 필리스티아인들과의 경쟁이 가능했지만 이후 월등히 앞선 문명을 보유하고 있었던 필리스티아인들에게 밀려 분배받은 땅을 빼앗기고 북쪽 ‘라이스’ 지역으로 밀려나게 되었다. 당시 북쪽 지역은 이스라엘 영토로 확정되지 않았고 가나안 사람들이 거주하였던 많은 장소들이 있었는데 단 지파 사람들은 이들 가나안 원주민들이 살고 있었던 라이스를 정복하고 자신들의 조상 이름을 따서 단이라 하였다.

 

단은 구약시대에 이스라엘의 최북단의 경계도시였는데, 구약시대에서 이스라엘 영토를 표시할 때 '단에서 브에르 세바까지'(판관 20,1; 1사무 3,20; 2사무 3,10; 17,11; 24,2; 24,15; 1열왕 5,5)라는 문구가 여기에서 유래했다. 역대기서에서는 ‘브에르 세바에서 단에 이르기까지’(1역대 21,2; 2역대 30,5)라고 거꾸로 이야기하기도 하였다.

판관 20,1 그리하여 이스라엘 자손들이 모두 나섰다. 단에서 브에르 세바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길앗 땅에서도 온 공동체가 일제히 미츠파로 주님 앞에 모여들었다.

1사무 3,20 단에서 브에르 세바에 이르기까지 온 이스라엘은 사무엘이 주님의 믿음직한 예언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2사무 3,10 그 일은 이 나라를 사울 집안에서 거두어, 다윗의 왕좌를 단에서 브에르 세바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과 유다 위에 세우는 것이오.”

2사무 17,11 그러므로 제 의견은 이렇습니다. 단에서 브에르 세바에 이르기까지 온 이스라엘 백성을 바다의 모래처럼 많이 불러 모으신 다음, 임금님께서 친히 전투에 나가십시오.

2사무 24,2 그리하여 임금은 자기가 데리고 있는 군대의 장수 요압에게 말하였다. “단에서 브에르 세바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를 두루 다니며 인구를 조사하시오. 내가 백성의 수를 알고자 하오.”

2사무 24,15 그리하여 주님께서 그날 아침부터 정해진 날까지 이스라엘에 흑사병을 내리시니, 단에서 브에르 세바까지 백성 가운데에서 칠만 명이 죽었다.

1열왕 5,5 솔로몬이 살아 있는 동안 내내 유다와 이스라엘에서는 단에서 브에르 세바에 이르기까지, 사람마다 자기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마음 놓고 살았다.

1역대 21,2 그리하여 다윗은 요압과 군대의 장수들에게 말하였다. “자, 브에르 세바에서 단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의 인구를 조사하여, 그들의 수를 알 수 있도록 나에게 보고하시오.”

2역대 30,5 임금은 브에르 세바에서 단에 이르기까지 온 이스라엘에,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을 기리는 파스카 축제를 예루살렘으로 와서 지낼 것을 선포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때에는 율법에 쓰인 대로 파스카 축제를 지내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단은 솔로몬 왕 이후 남북으로 갈라졌을 때 북왕국 이스라엘의 첫 왕인 예로보암은 북이스라엘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전에 가서 예배드리지 못하도록 베텔과 단에 금송아지를 만들어 숭배하게 하는 사건으로 다시 역사에 등장한다. 예로보암은 성벽(두께 3.6m, 높이 12m)을 웅장하게 쌓았고 성문도 건축하였다. 그리고 가로 18.7m 세로 18.2m 그리고 제단으로 오르는 계단의 폭이 8m나 되는 제단을 만들었다. 단은 북이스라엘이 멸망할 때까지 북이스라엘의 중요 성소 역할을 담당하지만 철저한 중앙 성소를 강조하고 있는 신명기 역사가에 의해 베텔과 더불어 멸망할 부정적인 장소로 평가를 받았다. 이후 단은 북쪽에 위치한 지리적 특성 때문에 아시리아의 침입을 빈번하게 받았고 기원전 721년에 이스라엘 왕국(2열왕 17,1-6)이 아시리아에 의해 정복당한 뒤에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져 버렸다.

1열왕 12,29-30 그러고 나서 금송아지 하나는 베텔에 놓고, 다른 하나는 단에 두었다. 그런데 이 일이 죄가 되었다. 백성은 금송아지 앞에서 예배하러 베텔과 단까지 갔다.

2열왕 10,29 그러나 예후는 이스라엘을 죄짓게 한, 느밧의 아들 예로보암의 죄, 곧 베텔과 단에 있는 금송아지 숭배에서는 돌아서지 않았다.

토빗 1,5 나의 친척들은 모두 내 조상 납탈리 집안의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이스라엘 임금 예로보암이 단에 만들어 세운 송아지에게 제물을 바치고, 갈릴래아의 모든 산 위에서도 제물을 바치곤 하였다.

 

 

텔단은 이스라엘 북단 경계 지점으로 예로보암이 세웠던 금송아지 신전이 있었던 장소라는 점보다도 더욱 매혹적인 것은 1993년 7월 21에 발견된 ‘텔단 석비’ 때문이다. 이 때 이전까지 성서학계에서는 다윗의 역사성이 문제시 되었었다. 왜냐하면 다윗이 성서에서 언급 되는대로 탁월한 왕이었다면 동시대 고대 근동의 문헌에서 다윗의 이름이 거론되어야 하는데 단 한 번도 언급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런 와중에 다행히 텔단 석비가 발견되었다. 아람어로 기록된 길이 32cm 폭 22cm의 이 석비 조각에는 당시 다마스커스의 왕 하자엘(1열왕 19,15-18)의 비문이 13줄로 새겨져 있는데, 이 비문 8째 줄에 ‘다윗왕조’라는 단어가 새겨져 있어 다윗의 역사성에 대한 의문은 풀린 셈이다. 이 비문은 성서 밖에서 다윗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첫 번째 문헌이며 현재 이스라엘 국립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바니아스에서 텔단을 향하여... 

 

 

1939년도에 만들어진 키부츠 단. 이곳에서 텔단까지는 약 1km 거리 

 

키부츠 단 안에 있는 공원                                                                                                                

 

키부츠 단 안에 있는 Beit Ussishkin, 지역 자연 고고학 박물관. 지역 훌라계곡과 헤르몬 산등을 아우르는 동식물 박물관. 또한 텔단으로부터 발굴한 것들을 전시

 

박물관 앞쪽

 

박물관 뒷쪽으로 흐르는 개울물

 

박물관 뒷쪽..다리 아래로 개울이 흐르고...박물관 왼쪽 벽 근처에서 1박 야영을 하고...

 

 

이스라엘 도보 순례(Israel Tracking)가 시작 되는 곳. 20개 지도 중  첫 번째 지도를 붙여 놓음. 박물관 바로 뒤쪽

 

이스라엘 도보순례 표시. 에일랏을 향하여!

 

키부츠 단 과수원

 

키부츠 단에서 텔 단으로 향하는 도로

 

 

 

 


 

 

텔단 현판

 

텔단을 흐르는 시냇물...이 물이 요르단 강물....

 

 

단 샘물에서 흘러나와 요르단강물로 흐르는 시냇물....                                                                         

 

 

요르단 강물의 발원지인 텔단...

 

텔단 내부의 산책길...

 

 

 

굽이 굽이 흐르는 샘물 사이로 산책길을 만들어 놓아서 한여름의 열기를 식히기에 최고!

 

 

 

 

 

단 샘물...이곳이 중동 지역에서 흘러나오는 최고의 샘물이라고...연간 240 백만 큐빅 미터의 물이 흘러 나옴

 

 

 

 

 

머무르고 싶은 청량함과 상쾌함과...

  

 

 

 

 

 

 

 

 

 

 

 

텔단 신전 자리

 

 

희생제사를 드리는 모습을...

 

제단

이스라엘 제단의 네 모퉁이에는 뿔이 달려 있다. 뿔은 성서에서 권세의 상징이지만 제단의 뿔에 대해서는 희생제물의 뿔을 묘사한 것, 신적 임재를 상징하는 석주(창세 28,18 야곱은 아침 일찍 일어나, 머리에 베었던 돌을 가져다 기념 기둥으로 세우고 그 꼭대기에 기름을 부었다.), 제단 끝 부분에 신성과 독특한 의미가 있다는 것(출애 29,20 그런 다음, 그 숫양을 잡아 그 피를 얼마쯤 받아서 아론의 오른쪽 귓불과 그 아들들의 오른쪽 귓불, 그들의 오른손 엄지와 오른발 엄지에 발라라. 그리고 나머지 피는 제단을 돌면서 거기에 뿌려라.) 등의 견해가 있다. 그 뿔의 용도는 분명하지 않지만 희생 제물을 매어 놓는데 사용되었다고 여겨진다(시편 118,2 주님은 하느님 우리를 비추시네. 제단의 뿔에 닿기까지 축제 제물을 줄로 묶어라.). 또한 살인자가 도망하여 제단 뿔을 붙잡으면 보호받을 수 있었으나 예외도 있었다(출애 21,14 그러나 악의로 흉계를 꾸며 이웃을 죽였을 경우에는, 그가 내 제단을 붙잡았더라도 끌어내어 사형에 처해야 한다; 1열왕 2,28-34 이 소식이 요압에게 전해졌다. 그는 압살롬을 지지하지는 않았지만 아도니야를 지지하였기 때문에, 주님의 천막으로 도망쳐 제단의 뿔을 잡았다. 솔로몬 임금은 요압이 주님의 천막으로 도망쳐 제단 곁에 있다는 보고를 듣고,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를 보내며, “가서 그를 내려치시오.” 하고 일렀다......그리하여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는 요압이 있는 데로 올라가 그를 내려쳐 죽였다. 요압은 광야에 있는 자기 집에 묻혔다.).

제단 뿔이 꺾이는 것은 심판을 상징한다(아모 3,14 내가 이스라엘의 죄를 벌하는 날 베텔의 제단들도 벌하리니 제단의 뿔들이 꺾여 땅에 떨어지리라.).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생활할 때에는 제단에 고리를 만들어 막대기를 꿰어 이동할 수 있게 하였다. 초기 이스라엘 제단은 천연재료, 즉 흙이나 돌로 만들었다. 흙을 쌓아 만든 토단은 자연 그대로의 성질을 중시하여 불에 굽지 않은 벽돌로 쌓았으며, 돌단은 정으로 쪼지 말아서 신성의 자연적 특성을 훼손하지 않아야 했다. 또한 제단은 하체가 드러나지 않도록 층계를 만들지 말아야 했다(출애 20,24-26 너희는 나를 위하여 흙으로 제단을 만들어, 그 위에서 너희의 번제물과 친교 제물, 그리고 양과 소를 바쳐라. 내가 나의 이름을 기억하여 예배하게 하는 곳이면 어디든지 가서 너희에게 강복하겠다. 너희가 나를 위하여 돌로 제단을 만들려거든, 다듬은 돌로 쌓아서는 안 된다. 너희가 정을 대면 제단이 부정하게 된다. 그리고 너희는 층계로 내 제단에 올라가서는 안 된다. 제단 앞에서 너희 알몸이 드러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

 

 

예로보암이 만든 제단 자리에 네 뿔이 달린 제단을 만들어 놓은것.

 

 

 

 

 

텔단에서 바라본 북쪽 광경...요르단 쪽...사진 아래쪽 비포장 도로는 이스라엘 도보순례 코스...

 

 텔단의 북쪽 광경...오른쪽에 보이는 산자락은 헤르몬 산자락...

 

 

고고학 발굴을 위해 파 놓은 현장...울창했던 나무 아래에 수천년의 역사가 잠들어 있는 곳...

 

 

 

키부츠 단쪽으로...울창한 나무들은 과수원...

 

성문

성문의 방들은 협정 체결이나 상거래, 원로와 재판관, 예언자, 비상시에는 왕의 자리로 사용되었다. 성문은 도시의 사회적, 종교적, 군사적 중심 역할을 하였다. 성문은 본래적인 방어 기능 외에도 시장, 방어, 재판장소, 제의장소, 회의장소 등으로 사용되었다.

 

성문의 구조에서 특징적인 것은 부속 방들의 변화이다. 대체로 6개에서 4개, 2개로 변화되었는데 그 까닭은 평화시기의 이용도에 따른 것으로 보여 진다. 성문이 열리면 맨 앞의 두 개의 방은 성문에 의해 대부분 차지되며, 4개의 방 성문에서는 나머지 2개 방에서 상거래나 시민 활동이 이루어지게 되고 6개의 방의 성문은 보다 이용도가 높게 된다.

시장

2열왕 7,1 엘리사가 말하였다. “주님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일 이맘때에 사마리아 성문에서 고운 밀가루 한 스아가 한 세켈, 보리 두 스아가 한 세켈 할 것이다.’”

 

방어

신명 3,5 그 성읍들은 모두 높은 성벽과 성문과 빗장으로 요새가 되어 있었다. 그 밖에 성벽이 없는 마을들도 매우 많았다.

 

재판장소

신명 21,19-20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를 붙잡고 그가 사는 성읍의 성문으로 원로들에게 데리고 가서, 그들에게 ‘이 우리 아들은 고집이 셀뿐더러 반항만 하며 우리 말을 듣지 않는 데다가 방탕아이고 술꾼입니다.’ 하고 말해야 한다.

신명 22,15 그 젊은 여자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젊은 여자의 처녀성을 증명하는 물증을 성문으로 그 성읍의 원로들에게 가지고 나간 다음,

아모 5,12 정녕 나는 너희의 죄가 얼마나 많고 너희의 죄악이 얼마나 큰지 알고 있다. 너희는 의인을 괴롭히고 뇌물을 받으며 빈곤한 이들을 성문에서 밀쳐 내었다.

신명 17,5 너희는 그 악한 짓을 저지른 남자나 여자를 성문으로 끌어내어, 돌을 던져 죽여야 한다.

 

제의 장소

2열왕 23,8 그는 유다 성읍들에서 모든 사제를 불러들이고, 게바에서 브에르 세바에 이르기까지 그 사제들이 향을 피우던 산당들을 부정한 곳으로 만들었다. 성읍 대문을 들어서면서 왼쪽으로 ‘여호수아 성주의 문’이 있었는데, 그 문 어귀에 세워진 대문 산당들도 허물어 버렸다.

 

회의 장소

1열왕 22,10 그때에 정장을 한 이스라엘 임금과 유다 임금 여호사팟은 사마리아 성문 어귀의 타작마당에 마련된 왕좌에 앉아 있었고, 그들 앞에서는 모든 예언자가 예언하고 있었다.

이사 29,21 이들은 소송 때 남을 지게 만들고 성문에서 재판하는 사람에게 올가미를 씌우며 무죄한 이의 권리를 까닭 없이 왜곡하는 자들이다.

아모 5,10 그들은 성문에서 올바로 시비를 가리는 이를 미워하고 바른말 하는 이를 역겨워한다.

 

 

 

이스라엘의 성문들을 복원해 놓은 것

 

므깃도, 하솔, 게셀, 아스돗, 라기스 등은 6개 방의 성문 형태를 취하고 있고, 브에르 세바와 텔단은 4개 방의 성문 형태이다.

 

 

룻기 4,1-2 보아즈는 성문으로 올라가 거기에 앉았다. 때마침 보아즈가 말하던 그 구원자가 지나갔다. 보아즈가 “여보게, 이리로 와서 앉게.” 하고 말하니 그가 와서 앉았다. 보아즈가 마을 원로들 가운데 열 사람을 데려다가, “여기 앉으십시오.” 하자 그들이 앉았다.  

 

2열왕 23,8 그는 유다 성읍들에서 모든 사제를 불러들이고, 게바에서 브에르 세바에 이르기까지 그 사제들이 향을 피우던 산당들을 부정한 곳으로 만들었다. 성읍 대문을 들어서면서 왼쪽으로 ‘여호수아 성주의 문’이 있었는데, 그 문 어귀에 세워진 대문 산당들도 허물어 버렸다.

 

 

 

가나안 시대의 성문

 

 복원 작업 중인 가나안 시대의 성문

  

이스라엘 성벽

 

 

키부츠 단과 텔단 사이의 과수원. 과수원 건너 숲이 우거진곳이 키부츠 단

 

 

 

피스타치오 나무 전망대...

 

방앗간

 

Wading pool...국립공원내 다른 샘들, 시냇물엔 들어갈 수 없고, 다만 이곳만 예외. 물이 얼마나 시원한지...

 

 

 

 

 

 

 


 

텔단을 나와서...순례의 여정을 시작... 

 

 텔단을 돌아서서...왼쪽 숲이 우거진 부분이 텔단...

 

 

텔단 신전자리쪽

 

숲이 우거진 텔단...

 

 

 

 


이곳부터는 세니르 시냇물 국립공원 

 

 

 

 

 

 

 

아랍어로는 하츠바니(Hatzbani) 시냇물이라고도 알려진 이 시냇물은 유대인들은 세니르(Senir) 시냇물이라고 부른다. 이 세니르 시냇물은 요르단 강을 이루는 세개의 큰 수원지 중의 하나로, 단과 헤르몬(바니아스) 시냇물이 헤르몬 산에서 흘러나오는 물이라면 이 세니르 시냇물은 북쪽 레바논 계곡에서 흘러 나오는 60km의 길이로 이스라엘 정부에서는 국립공원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선사시대 박물관을 지나면서... 

 

 

 

Kfar Gil'adi 키부츠 마을 공동묘지 근처에서 야영하며...공동묘지 내 사자상

 

 

어둠이 내리는 헤르몬산을 바라보며...

 

 

 골란고원의 일출...

 

 

이스라엘 트렉킹 3번 포스트..키럇 시모나 뒷산

 

 

내려다 보이는 마을이 키럇 시모나

 

 

키럇 시모나 시내 전경

 

 

 

키럇 시모나 버스 정류장

 

 

 

단을 두고서는 이렇게 말하였다.

“단은 바산에서 뛰어나오는 사자 새끼다.”

(신명 33,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