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르단

예수님 세례터-요르단 강 건너편 베타니아

테오필로 2011. 1. 13. 03:20

 

예수님 세례터

 

‘단’에서 ‘흐른다’는 뜻을 가진 ‘요르단’ 강은 헤르몬 산자락에 있는 ‘단’에서부터 흘러 내려 예수님의 공생활 터전인 갈릴래아 호수에서 바다를 이루며 세상을 포옹한다.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그리스도의 세례, 런던 국립 박물관(Egg tempera on poplar panel, 167 x 116 cm)

 

 

 

넘쳐흐르는 생명수는 다시 계곡을 굽이치며 젖과 꿀이 흐르는 풍요로움의 땅인 예리코를 지나 사해로 흘러 들어간다.

 

 

 

 

 

 

 

 

 

 

사진 중앙 요르단 강 계곡을 따라 오랜지 색 선이 그어져 있는데 이 선을 따라 오른쪽은 요르단 왕국, 왼쪽은 이스라엘 영토로 나뉜다. 중앙선에 표기된 1번이 예수님 세례터이다.

 

 

1. 예수님 세례터  2.와디 엘-카라(Wadi el-Kharrar) 계곡

 

 

1.이스라엘쪽 예수님 세례터  2.요르단쪽 예수님 세례터

 

 

초세기 그리스도교 전승에서는 예수님이 요르단 강을 건넌 것을 구약과 대비시키고 있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요르단 강을 건너 약속의 땅으로 들어간 것처럼 예수님은 새로운 이스라엘을 구원하신다는 것이다. 전승에서는 여호수아가 요르단 강을 건넌 곳과 예수님이 세례를 받은 장소가 같은 장소라고 이야기 한다.

 

왼쪽 하늘색은 요르단 강. 중앙을 가로지르는 노란색은 고대 순례 도로. 예리코와 느보산으로 연결된 순례길이었다. 동그란 검은 점이 네개 있는데 왼쪽에서부터...세례자 요한 성당. 두 번째-오늘날 세례터 시설  세 번째-고대 수영장  네 번째-엘리야 언덕.  노란 선 위쪽으로 짙은 색으로 표시된 것이 와디 엘-카라 계곡 

 

 

 

 

 

 

 

 

 

엘리야는 그의 생애의 끝이 다가온 것을 알고 요르단 강으로 가 겉옷을 들어 말아 물을 치니 물이 양쪽으로 갈라졌고 엘리야와 엘리사는 마른 땅을 밟고 강을 건넜다. 그리고 엘리야 예언자는 회오리바람에 실려 하늘로 올라갔다.

2열왕 2,7-11 예언자들의 무리 가운데 쉰 명이 그들을 따라갔다. 두 사람이 요르단 강 가에 멈추어 서자, 그들도 멀찍이 떨어져 멈추어 섰다. 엘리야가 겉옷을 들어 말아 가지고 물을 치니, 물이 이쪽 저쪽으로 갈라졌다. 그리하여 그 두 사람은 마른 땅을 밟고 강을 건넜다. 강을 건넌 다음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물었다. “주님께서 나를 너에게서 데려가시기 전에, 내가 너에게 해 주어야 할 것을 청하여라.” 그러자 엘리사가 말하였다. “스승님 영의 두 몫을 받게 해 주십시오.” 엘리야가 말하였다. “너는 어려운 청을 하는구나. 주님께서 나를 데려가시는 것을 네가 보면 그대로 되겠지만, 보지 못하면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이야기를 하면서 계속 걸어가는데, 갑자기 불 병거와 불 말이 나타나서 그 두 사람을 갈라놓았다. 그러자 엘리야가 회오리바람에 실려 하늘로 올라갔다.

 

오늘날 엘리야 예언자가 불 병거를 타고 하늘로 승천한 장소, 세례자 요한이 회개를 선포하고 세례 운동을 시작한 장소 그리고 예수님께서 세례자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은 장소는 ‘요르단 강 건너편’인 ‘베타니아’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요한 1,28 이는 요한이 세례를 주던 요르단 강 건너편 베타니아에서 일어난 일이다.

 

생명의 물에서 죽음의 물로 넘어가는 사해 근처의 요르단 강가에서 세례자 요한이 회개를 선포하고 죄 사함의 세례 운동을 시작한 것은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장소 즉, 구약을 마감하고 신약을 시작하는 건널목이었고, 정화의 장소인 광야의 삶을 마감하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복지로 넘어가는 장소였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마태 3,1-6 그 무렵에 세례자 요한이 나타나 유다 광야에서 이렇게 선포하였다.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요한은 이사야 예언자가 말한 바로 그 사람이다. 이사야는 이렇게 말하였다.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 ‘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 그분의 길을 곧게 내어라.’” 요한은 낙타 털로 된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둘렀다. 그의 음식은 메뚜기와 들꿀이었다. 그때에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요르단 부근 지방의 모든 사람이 그에게 나아가, 자기 죄를 고백하며 요르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았다.

 

성지를 그린 6세기 마다바 지도에는 요르단 강을 따라 헤엄쳐 내려가는 물고기와 사해로부터 역류해 올라가는 물고기를 그리고 있다. 물고기를 뜻하는 희랍어의 다섯 글자는 “예수 그리스도 하느님의 아들 구세주”("Ἰησοῦς Χριστός, Θεοῦ Υἱός, Σωτήρ", )의 첫 글자를 모으면 물고기(ΙΧΘΥΣ)라는 희랍어가 된다. 물고기는 물이 없이 살아갈 수 없는 것처럼 참 그리스도인은 세례의 물이 없이 살아갈 수 없기 때문에 물고기는 세례의 상징으로 사용 되었다. 그러므로 마다바 지도의 작가는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은 이 요르단 강에 예수님의 세례를 기념하는 물고기를 그리고 있는 것이다.

요르단 강 건너편에는 사자에 쫓기고 있는 가젤(영양류)이 있다. 강자가 약자를 폭력으로 다루듯 마치 동생의 아내와 결혼한 것을 비판하는 세례자 요한을 참수한 헤로데의 폭력을 상기시키는 의미로 세례자 요한의 공생활 터전 근처에 그리고 있다.

 

마다바 모자이크에서 다음과 같이 그려진 부분이 예수님 세례터이다. "벳 아라바"라고 표기되어 있다.

 

요르단 강에서 헤엄치는 물고기들이 보이며, 강 양쪽으로 막대기를 가로질러 놓고 그 중앙에 배가 있다. 이것은 강을 건너는 배를 그려 놓은것이다. 그 위쪽으로 가젤(영양류)이 사자에 쫓기는 그림이 있다. 사자의 모습은 형상을 알아보지 못하도록 지워져 있다.

 

 

세례자 요한의 외침 소리가 들려오는 듯 한 이 장소는 이제 하느님과 인간이 마주하는 장소가 되었다. 일찍이 예언자 엘리야가 불가마를 타고 승천할 때 열렸던 그 하늘은 이제 다시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면서 열리게 된다.

마태 3,16-17 예수님께서는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셨다. 그때 그분께 하늘이 열렸다.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영이 비둘기처럼 당신 위로 내려오시는 것을 보셨다. 그리고 하늘에서 이렇게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장소를 시나이·바티칸·알렉산드리아 사본에서 번역된 신약성경은 요르단 강 건너편 ‘베타니아’로 표기하고 있는 반면 개신교에서 사용하는 킹 제임스 성경에서는 ‘벳 아라바’(희-Βηθαβαρά, Beth Abara) 지역이라고 표기하고 있다. 오늘날 요르단 왕국에 속한 벳 아라바(Beth Abara)는 히브리어로 ‘강나루 집 또는 건너가는 집’을 뜻한다.

 

벳 아라바는 여호수아가 약속의 땅을 분배하면서 벤야민 지파에게 주어진 땅이었다.

여호 18,21-22 벤야민 자손 지파가 씨족별로 받은 성읍은 예리코, 벳 호글라, 에멕 크치츠, 벳 아라바, 츠마라임, 베텔,

 

벳 아라바는 판관기에서 ‘벳 바라’로 표기되는 장소로 추정되며, 기드온이 미디안족을 물리치고 점령한 곳이다.

판관 7,24 기드온은 또 에프라임 온 산악 지방에 전령들을 보내어 말하였다. “미디안족을 향해 내려와서 그들을 앞질러, 벳 바라까지 물가와 요르단을 점령하시오.” 이렇게 동원된 에프라임의 모든 사람이 벳 바라까지 물가와 요르단을 점령하였다.

 

성서 주석가인 초세기의 교부 오리게네스(Origenes, 185-254)는 성서 주석을 위해 여섯 번역본을 대조한 것으로 유명한데 그는 요르단 강 동쪽에 ‘베타니아’라는 지명이 발견되지 않게 때문에 “요르단 강 건너편 베타니아”는 “벳 아라바”라고 주장하였다.

오리게네스 이후 교회사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카이사리아의 주교 에우세비우스(260/264경~340경)는 성경에 나오는 지명을 지리적, 역사적으로 설명하면서 알파벳순으로 나열한 희랍어 「지명사전」(Onomastikon)에서 세례자 요한의 활동 장소를 “벳 아라바”라고 기록하였고 이것은 후에 예로니모 성인에 의하여 라틴어로 번역되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에우세비우스(약 295년) 58,18-20; 예로니모(약 390년) 59,19-21

지명사전 : “벳 아라바(요한 1,28)는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주던 요르단 강 건너편이고 이 장소는 오늘날에도 생명을 주는 개울 안에서 세례를 받음으로써 많은 신자들이 영원한 생명을 얻기를 바라는 장소이다.”

 

이스라엘에서 요르단 강 건너편 예수님 세례터로 가는 버스 안에서...숲이 우거진 부분은 요르단 강 계곡

 

 

 

 

 

 

 

 

세례터로 들어가는 진입로

 

 

 

 

세례터 주차장

 

 

 

6세기 초에 이곳을 순례한 테오도시우스의 순례기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순례기 : 주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장소에는 대리석 기둥이 세워져 있고 그 꼭대기에는 쇠로 만들어진 십자가가 세워져 있다. 이곳에는 동로마 아나스타시우스 황제(491-518재위)가 건설한 세례자 요한을 기념하는 성당이 있다. 엄청나게 큰 둥근 아치 천장은 요르단 강이 범람하더라도 문제없도록 매우 높게 만들어져 있다.

 

 

요한복음에 의하면 세례자 요한이 회개를 선포한 장소는 “요르단 강 건너편 베타니아”(요한 1,28; 10,40)와 “살림에 가까운 애논”(요한 3,23)이라고 증언한다.

요한 1,28 이는 요한이 세례를 주던 요르단 강 건너편 베타니아에서 일어난 일이다.

 

요한 10,40 예수님께서는 다시 요르단 강 건너편, 요한이 전에 세례를 주던 곳으로 물러가시어 그곳에 머무르셨다.

 

요한 3,23 요한도 살림에 가까운 애논에 물이 많아, 거기에서 세례를 주고 있었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가서 세례를 받았다.

 

공관복음에서(마태오, 마르코, 루카)에서는 예수님의 세례에 대해 언급하고 있지만 아무도 그 장소에 대해서는 언급하고 있지 않다(마태 3,13-17; 마르 1,9-11; 루카 3,21-22). 세례자 요한이 활동한 장소로 마태오와 마르코 복음 사가는 “유다 광야”(마태 3,1; 마르 1,4)라고 이야기 하고 루카복음사가는 “요르단 부근”(루카 3,3)이라고 증언하고 있다. 그리고 마태오와 마르코는 세례자 요한에 의한 세례를 언급하지만 루카는 언급이 없다.

 

마태 3,13-17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려고 갈릴래아에서 요르단으로 그를 찾아가셨다. 그러나 요한은 “제가 선생님께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선생님께서 저에게 오시다니요?” 하면서 그분을 말렸다. 예수님께서는 “지금은 이대로 하십시오. 우리는 이렇게 해서 마땅히 모든 의로움을 이루어야 합니다.” 하고 대답하셨다. 그제야 요한이 예수님의 뜻을 받아들였다. 예수님께서는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셨다. 그때 그분께 하늘이 열렸다.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영이 비둘기처럼 당신 위로 내려오시는 것을 보셨다. 그리고 하늘에서 이렇게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마르 1,9-11 그 무렵에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나자렛에서 오시어, 요르단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다. 그리고 물에서 올라오신 예수님께서는 곧 하늘이 갈라지며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당신께 내려오시는 것을 보셨다. 이어 하늘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루카 3,21-22 온 백성이 세례를 받은 뒤에 예수님께서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를 하시는데, 하늘이 열리며 성령께서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분 위에 내리시고, 하늘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와디 엘-카라 계곡. 요르단 강물 줄기

 

 

 

 

 

 

 

 

 

 

요르단 강 건너편 예수님 세례터에 건축 중에 있는 가톨릭 성당. 이곳 성당이 완공되면 예수님 세례 기념 미사를 이곳에서 봉헌할 수 있을 것이다.

 

 

 

 

삼위일체 성당. 계단을 내려가 세례를 받을 수 있도록 설계 되었다. 물쪽에 지어진 지붕 있는 건물은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옷을 벗어놓은 곳을 기념하는 장소

 

 

 

 

 

 

 

 

요한복음 사가가 전하고 있는 “요르단 강 건너편 베타니아”는 세례자 요한이 예루살렘에서 온 사제들과 레위인들에게 “주님의 길을 곧게 내기 위해 파견된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요한 1,23)라고 자신을 소개하고 “내 뒤에 오시는 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치 못하다”(요한 1,24-28 참조)고 자신의 소명과 그리스도에 대해 증언한 곳이다. 요한은 이곳에서 예수님께서 자기 쪽으로 오시는 것을 보고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요한 1,29)고 증언 하였다. 또한 이곳은 예수님께서 당신의 첫 제자들을 “와서 보아라!”고 초대하신 장소이기도 하다(요한 1,35-51 참조)

요한 1,29-34 이튿날 요한은 예수님께서 자기 쪽으로 오시는 것을 보고 말하였다.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저분은, ‘내 뒤에 한 분이 오시는데, 내가 나기 전부터 계셨기에 나보다 앞서신 분이시다.’ 하고 내가 전에 말한 분이시다. 나도 저분을 알지 못하였다.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준 것은, 저분께서 이스라엘에 알려지시게 하려는 것이었다.” 요한은 또 증언하였다. “나는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하늘에서 내려오시어 저분 위에 머무르시는 것을 보았다. 나도 저분을 알지 못하였다. 그러나 물로 세례를 주라고 나를 보내신 그분께서 나에게 일러 주셨다. ‘성령이 내려와 어떤 분 위에 머무르는 것을 네가 볼 터인데, 바로 그분이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분이다.’ 과연 나는 보았다. 그래서 저분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고 내가 증언하였다.”

 

 

 

 

 

 

 

 

 

 

 

 

 

 

 

 

오늘날 예수님 세례터 근처에 지어진 그리스 정교회 성당

 

 

 

세례자 요한이 회개를 선포한 장소 즉,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장소에 대해 공관복음과 요한복음의 증언에 차이가 있고 또 초대 교부의 증언과 1894년에 마다바에 있는 성 조지 성당 바닥에서 발견된 6세기에 만들어진 비잔틴 시대의 성지 모자이크 지도가 증언하는 바가 서로 다르다. 모자이크 지도에는 요르단 강 서편에 “벳 아라바”가 그려져 있다. 아마도 모자이크 지도를 만든 작가는 자신이 사는 요르단 강 동쪽을 기준으로 삼았기 때문에 “요르단 강 건너편”을 서쪽이라고 판단한 듯하다.

 

그러면 왜 요한복음사가는 예수님이 세례 받은 장소가 “요르단 강 건너편”이라고 명시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것일까?

 

100년경에 쓰인 요한복음서는 이미 먼저 쓰인 공관복음(마르코-70년경, 루카-80∼85년경, 마태오-80∼90년경)에서 세례자 요한의 활동장소를 “유다 광야”와 “요르단 부근”이라고 언급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었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르단 강 건너편”이라는 지명을 명시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것은 요한 복음사가가 명확한 신학적인 의도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요한복음에서는 요르단 강을 기준으로 요르단 강 건너편과 요르단 강 서편(약속의 땅)을 세례자 요한과 예수를 대조시키는 중요한 장소로 사용하고 있다.

 

공관복음에서는 세례자 요한이 활동한 장소로 “유다 광야”(마태 3,1; 마르 1,4)와 “요르단 부근”(루카 3,3), 요한복음은 “요르단 강 건너편 또는 살림에 가까운 애논”이라고 언급하고 있지만 그 장소의 정확한 위치에 대해서는 언급하고 있지 않다.

 

요한복음에서는 세례자 요한과 관련해서 언제나 “요르단 강 건너편”(요한 1,28; 3,26; 10,40)이라고 언급하면서 세례자 요한을 요르단 강 동편에 있는 인물로 묘사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요한복음의 신학이다.

 

요한복음에서는 신학적인 의도를 가지고 모세와 세례자 요한을 같은 운명을 타고난 인물로 그리고 있다. 요한복음에 의하면 모세와 세례자 요한은 ‘약속된 땅’즉 가나안 복지인 구원의 땅에 들어갈 수 없는 존재들이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가나안 복지의 문턱에 다다랐지만 자신은 약속된 땅이 내려다보이는 요르단 강 건너편에 있는 느보 산에서 최후를 마쳐야 했다(민수 27,12-14; 신명 32,48-52; 34,1-7). 마찬가지로 예수의 선구자로서 사명을 수행하며 구약과 신약을 이어주는 세례자 요한의 운명도 약속된 구원을 성취하는 약속의 땅으로 다시금 들어갈 수 있도록 사람들을 준비시키는 역할에 지나지 않다는 것이다. 그 성취는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요르단 강을 건넜듯이(여호 3,8-17참조)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다시금 그 길이 열리고 복음의 시대가 열리게 된다.

 

요한복음 사가는 신학적인 의도를 가지고 언제나 요르단 강 건너편은 미완성의 땅이요 비구원의 땅으로 그리고 있다. 약속된 땅은 ‘구원’을 의미하는 ‘예수’(여호수아)에 의해서만 건너갈 수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요르단 강을 건넜던 ‘여호수아’와 ‘예수’는‘야훼는 구원이시다’는 동일한 의미(יֵשׁוּעַ. Yēšûă‘, 신명3,21; 판관 2,7)를 가지고 있음을 유의해 볼 수 있다.

 

 

비잔틴 시대 동안 세례자 요한으로부터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은 장소로 요르단 강을 사이로 두고 동쪽과 서쪽으로 두 개의 순례 장소가 나뉘게 되었다. 비록 마다바 지도에서는 요르단 강 서쪽으로 표기하고 있지만 6세기 초부터 순례자들은 양쪽 지역 성당을 모두 순례하는 것으로 언급하고 있다.

 

 

 

 

 

 

 

 

 

세례터로 들어가는 길

 

 

 

 

 

 

계곡 위에 지어진 다리

 

 

세례터로 향하면서...공사 중인 가톨릭 성당

 

 

이미 완공된 그리스 정교회 성당

 

 

 

 

 

 

 

 

 

 

 

 

그리스 정교회 기념 성당 내부

 

 

 

 

 

 

 

 

 

 

 

 

 

 

 

 

 

 

 

 

요르단 왕국쪽 예수님 세례터

 

 

 

 

 

 

작은 시냇물을 사이로 요르단 강 동편과 서편이 나뉘어져 있다. 건너편은 이스라엘 쪽

 

 

 

 

강 건너 보이는 건물쪽에서 성지관구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에서는 매년 10월 마지막 주 목요일 예수님 세례 기념 미사를 봉헌한다.

 

 

 

 

 

 

 

 

 

 

 

 

 

 

 

 

요르단 강물에서 세례 갱신 예식을 집전하는 김모세 신부(작은형제회)

 

 

대추야자.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환호하며 흔들던 것이 바로 대추야자 나무 잎이었다.

 

 

 

4세기 초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어머니 헬레나는 요르단 강을 건너 세례자 요한이 살았다고 하는 동굴을 방문 하였다. 에우세비우스는 헬레나 성녀가 그곳에 기념 성당을 지었다고 전한다.

333년경에 쓰인 보르도에서 온 익명의 순례자는 엘리야 예언자가 하늘로 승천한 장소(2열왕 2,5-14)를 언급하고 있고 그 언덕은 비잔틴 시대 이래로 엘리야의 언덕을 뜻하는 텔 마르 엘리야스(Tell Mar Elias)라고 부른다.

 

530년경 테오도시우스 부주교는 팔레스티나를 순례 하고 순례기를 남겼는데 예수님께서 세례 받은 장소에는 쇠로 된 십자가가 있는 대리석 기둥이 있고, 아치 아케이드 위에 지은 사각형 모양의 성당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다. 성당은 그 아래로 물이 흐르도록 아치 위에 지어졌다.

 

570년경 피아첸자의 안토니우스(Antonius of Piacenza)는 요르단 강가에 주님께서 세례 받으신 장소에는 물속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대리석 계단이 있다고 증언하고 있다.

그리고 670년경에 프랑스의 아르쿨프스(Arculfus)는 작은 사각형 성당의 가장자리에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옷을 벗어 놓으신 장소에 대해서 언급한다.

에피파니우스(Epiphanius, 750-800)는 세례자 요한 수도원 서쪽에서 조금 떨어진 요르단 강 강둑에 거대한 삼위일체 성당을 짓고 있는 것을 언급하고 있다.

 

고고학 발굴터를 향하여

 

 

 

 

 

 

세례자 요한의 샘

 

 

 

 

 

 

 

 

 

 

 

 

 

 

수영장. 예수님 세례를 기념하며 세례 예식을 위해 만들었을 것이다.

 

 

 

 

 

 

 

 

 

 

 

 

 

 

엘리야의 언덕에서 예수님 세례터를 바라보고. 이곳에서 엘리야 예언자가 승천했다.

 

 

 

 

 

 

 

 

낙타를 탄 카라반들이 머물 수 있는 숙소. 

 

 

엘리야 언덕의 유적지

 

 

 

 

 

 

 

 

아치 성당은 2000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의 세례터 첫 순례를 기념해서 요르단 왕국에서는 '요한 바오로 2세 성당'으로 명명했다.

 

 

 

 

 

 

요르단 암만을 향하는 길

 

 

 

 

 

요르단 강 서쪽 지역에 있는 예수님 세례터는 1967년 이스라엘이 요르단으로부터 빼앗은 군사 점령지로 오늘날 이스라엘의 통제 하에 있기 때문에 평상시는 철조망으로 닫혀 있다. 이곳에는 5세기에 지어진 그리스 정교회의 성 요한 수도원의 터가 남아 있고 작은 형제회(프란치스코회)가 1933년에 지은 경당도 있었지만 전쟁 중에 모두 파괴되어 그 흔적만 남아 있다. 군사지역으로 묶여 있지만 작은형제회 성지관구에서는 매년 10월 마지막 주 목요일 예수님 세례터 서쪽편에서 예수님 세례 기념 미사를 봉헌한다. 반면 그리스 정교회에서는 1월 18일(2011년), 콥트 교회와 시리아 교회는 1월 19일에 예수님 세례 기념 미사를 봉헌한다.

 

요르단 강 건너편은 6세기경에 살았던 은수자인 이집트의 성녀 마리아를 기억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마리아는 17년 동안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거리의 여성으로 살았다. 그러던 중 28세 때 십자가 현양 축일을 지내러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순례자들과 함께 순례길을 떠나는데 순례 도중에도 악습을 고치지 못하고 열심한 순례자들을 타락시켰다.

예루살렘에 도착하여 성당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는데 누군가가 뒤에서 잡아당기는 것 같아 성당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한쪽 구석에 서 있게 된다. 그리고는 눈을 들어 마리아상을 바라보는데 성모님께서 눈물을 흘리고 계셨다. 이에 자신의 잘못을 크게 깨달았고 기쁜 마음으로 성당 안에 들어가 기도 할 수 있었다. 그때 요르단으로 가서 여생을 지내라는 음성을 듣고서 은수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그녀는 요르단 광야에서 47년 동안이나 아무도 만나지 않고 홀로 살았다고 한다.

당시 팔레스티나에는 한 곳에서만 43년 동안 살면서 하느님을 섬기는 조시무스(Zosimus)라는 열심한 수도자가 있었다. 그는 하느님의 계시를 받고 요르단으로 향하다가 기도 시간이 되어 시편 기도를 하는데 “신부님, 나는 여자인데 당신의 겉옷을 던지면 나를 볼 수 있습니다”라는 이상한 소리를 듣게 된다. 조시무스는 마리아에게 성체를 영해주고 다음 해에 만나기로 하고 돌아왔고, 약속된 날에 다시 영성체를 해주었다. 그 후 약속한 다음 장소로 갔으나 마리아는 이미 운명하고 있었고, 가련한 마리아를 장사지내 달라고 청하며 숨을 거두었다.  

 

 

성경의 “요르단 강 건너편” 지역에 대한 첫 번째 고고학 발굴작업은 1899년에 실시하여 530년에 테오도시우스 부주교가 보았다는 아치 위에 지어진 성당을 확인 하였다. 오늘날 세례 고고학 공원(Baptism Archaeological Park)이라고 불리는 이 장소는 와디(우기에만 물이 흐르는 계곡)를 따라 약 2.4km 거리이다. 이곳에는 단물과 짠물인 5-6개의 샘에서 맑은 물이 흘러 나와 요르단 강으로 흘러 들어가는 와디 엘-카라(Wadi el-Kharrar) 계곡에 위치해 있다. 이곳에는 로마와 비잔틴 시대(4-6세기)에 만들어진 세례 연못을 갖춘 거대한 수도원의 흔적이 남아 있다. 요르단 동편에 있는 유적지는 사해 북단에서 북동쪽으로 약 8km 그리고 예리코 남동쪽으로 약 8km 가량 떨어져 있다.

 

1995년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예루살렘 성서 대학의 피치릴로(M.Piccirillo) 신부에 의해서 발굴작업이 이루어져 예수님 시대 당시의 사람들이 살았던 마을의 흔적들을 확인하였다.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예루살렘 성서대학의 고고학자였던 피치릴로(M.Piccirillo) 신부를 기념한 돌기둥. 2008년 10월에 선종하였다.

 

 

1996-2002년까지 요르단 정부에 의해서 고고학 발굴작업이 이루어 졌으며 텔과 요르단 강 근처에서 비잔틴 시대의 거대한 수도원과 작은 경당들, 은수자들의 동굴과 방들 그리고 도자기 수로, 회반죽을 바른 거대한 수영장과 낙타 카라반을 위한 숙소 등을 발굴하였다.

 

 

요르단 강 지역은 군사지역이었기 때문에 순례자들이 접근할 수 없었다. 그러나 1994년 이스라엘과 요르단은 평화 협정을 맺은 이후 요르단 동쪽 요르단 왕국 지역에는 지뢰들을 모두 제거하였고 고고학자들과 순례자들 그리고 관광객들이 방문할 수 있게 되었다. 요르단 강의 예수님 세례터는 겨울 : 8:00 a.m.-4:00 p.m.(마지막 입장 3:00p.m.), 여름 : 8:00 a.m.-6:00 p.m.(마지막 입장 5:00 p.m.)에 방문할 수 있다. 군사지역이기 때문에 안내자를 동반한 방문만 가능하다.

 

현재 요르단 정부는 순례객들을 유치하기 위해 군사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유적지를 발굴하고 그리스 정교회와 러시아, 콥트, 아르메니아 정교회, 카톨릭 교회 등에 기념 건물을 짓도록 허가하여 일부는 이미 완공이 되었고 일부는 건축 중에 있다. 특별히 카톨릭 교회는 대희년을 맞이하여 교황 바오로 2세께서 2000년 3월 21일 역사상 처음으로 세례터를 순례 하셨다. 이에 요르단 정부는 요한 바오로 2세의 방문을 기념하여 고고학 발굴장소에 있는 ‘아치성당’을 ‘요한 바오로 2세 성당’으로 명명하였다. 교황 베네딕도 16세께서도 2009년 5월 10일 세례터를 순례하셨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정확한 장소를 이야기 하기는 어렵다. 어떤 학자들은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장소로 요한복음의 베타니아와 ‘벳 아라바’가 동일한 장소일 것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나자로의 집이 있는 올리브 산 넘어 “베타니아”는 ‘가난한 자의 집’이라는 어원을 가지고 있지만 동일한 단어인 “요르단 강 건너편”에 있는 “베타니아”는 또한 ‘나룻배의 집’이라는 어원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강나루 집”을 뜻하는 “베트-아바라”와 동일한 뜻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장소는 요르단 강 줄기가 아니라 판관기 7,24에서 언급하고 있는 것처럼 요르단 강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의 하나일 것이라고 이야기 한다. 이스라엘이 건국(1948.5.14)된 이후 갈릴래아 호수의 물을 식수와 농업·공업용수로 사용하면서 요르단 강물은 말라버렸고 더구나 이스라엘의 인접국 시리아, 요르단, 레바논은 댐을 만들어 수로를 통제하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 홍수로 인한 범람은 없다. 그렇지만 1940년에 찍혀진 요르단 강은 홍수로 물이 범람하는 모습을 볼 수 있듯이 2천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요르단 강 하류의 계곡은 계절적인 홍수로 인한 범람으로 수없이 변화 되어 왔다.

 

자연 그대로의 요르단 강 모습. 1940년. 굽이굽이 물길을 내어 흐르는 모습이 인상깊다.

 

 

요르단 강물이 범람 한 모습의 사진. 건물이 물에 잠겨 있다. 오른쪽으로는 전신주가 지나가는 곳으로 도로가 물에 잠긴 모습.

 

 

마다바 지도에 그려져 있는것처럼 요르단 강 양편에 줄을 묶고, 줄을 당겨서 강을 건너는 나룻배.

 

 

 

오늘날 요르단 강은 실개천처럼 물이 흐르고 있지만 예수님 시대에서부터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해마다 1마일의 폭으로 강줄기가 변경되어 왔다. 비잔틴 시대에 이러한 강줄기를 따라 그 위에 기념성전이 지어졌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았던 정확한 위치를 찾는 것은 더욱더 쉽지 않을 것이다.

 

 

십자가에 달리시어 당신 가슴에서 피와 물을 함께 흘리셨으며,

부활하신 후에는

“가서 만민을 가르치며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세례를 주라”고 제자들에게 명하셨나이다.

그러므로 주님,

주님의 교회를 굽어보시고

이 교회 안에 세례의 샘을 솟아나게 하시고,

성령을 통하여 독생성자의 은총을 이 물에 부어주심으로써,

하느님의 모습을 따라 창조된 사람으로 하여금

온갖 묵은 허물을 씻어 버리고

물과 성령으로 새로이 태어나게 하소서.

(영세수 축성 기도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