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 관련 정보

작은형제회 성지 보호 관구 (Custody of the Holy Land)

테오필로 2006. 11. 19. 14:35

간략한 역사적 배경

 

성지에서의 프란치스칸 현존은 작은 형제회(Order of Friars Minor)가 시작할 무렵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성프란치스코에 의해 1209년에 창설된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는 곧바로 해외 선교를 시작하였다.

1217년 총회의 결정으로 수도회는 관구 단위로 나누어졌는데, 이때 성지관구(the Province of the Holy Land)가 탄생하였다. 십자군의 확장으로 인해 성지 관구의 사도직은 지중해 남동부 연안, 곧 이집트에서부터 시작해서 그리스 저 너머 지역까지 관할하게 되었다.

 

성지관구는 자연스럽게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셨던 땅과 우리의 구원이 성취된 장소로 이루어졌다. 이런 이유로 성지 관구는 ‘모든 관구들의 진주(眞珠)’로 간주되었고, 수도회가 선교를 전 세계적으로 넓혔을 때는 ‘모든 선교의 진주’로 간주되었다. 이 칭호는 오늘날까지도 남아 있다.

 

이 지역은 성프란치스코가 직접 방문하였던 곳이다. 그는 1219년에서 1220년 사이 몇 개월 동안 이집트, 시리아 그리고 팔레스타인으로 여행을 하였다.

이 시기가 바로 성 프란치스코와 ‘멜렉 엘 카멜’(Melek-el-Kamel) 이집트 술탄의 그 유명한 만남이 이루어진 때였다. 이 놀라운 사건은 오랜 세기 동안 동방의 프란치스칸 선교 사도직 안에 깊이 스며들었다.

이들은 ‘비신자들’이든 ‘갈라진 형제들’이든 상관없이 프란치스코의 정신을 갖고 일했다. 그러므로 작은 형제들의 선교 여행은 피안카르피니(Pian-Carpini)의 요한, 포르데노네(Pordenone)의 오데릭, 몬테코르비(Montecorvino)의 요한, 마리뇰리(Marignolli)의 요한과 같은 형제들의 노력과 함께 넓게 그리고 멀리 퍼져갔는데 이들은 저 멀리 러시아, 티베트 그리고 중국까지도 갔던 것이다.

 

1263년, 복음전파 활동을 더욱 효과적으로 조직하기 위해 성지관구는 사이프러스, 시리아, 레바논 그리고 팔레스타인으로 그 관할지역을 축소 분할하였다.

그리고 이 지역들을 다시 ‘속관구’(custody)라는 명칭의 단위로 세분하였다.

곧 사이프러스 속관구, 시리아 속관구 그리고 본래 의미의 성지 속관구(the Custody of the Holy Land)를 두었는데, 성지 속관구에는 아코의 성 요한 수도원, 안티오키아 수도원, 시돈 수도원, 트리폴리 수도원, 티로 수도원, 예루살렘 수도원과 자파 수도원이 포함되었다.

이 시기에는 작은 형제들의 사도직 활동이 주로 십자군 주변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