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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디 켈트(Wadi Kelt) 계곡과 은수자들의 첫 공동체 파라의 라우라

테오필로 2010. 4. 12. 11:46

 

 

와디 켈트(Wadi Kelt) 계곡과

은수자들의 첫 공동체 파라의 라우라

 

예루살렘 북동쪽에서 시작하여 유다광야의 동쪽을 가로질러 팔레스타인 서안 예리코로 흘러 내려가는 와디 켈트 계곡(Wadi Kelt 또는 Qult 또는 Qilt)에는 용솟음쳐 나오는 3개의 샘이 있어서 유다 광야의 오아시스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1.구 예루살렘  2.알몬(아나톳) 유대인 정착촌  3.파라 샘-러시아 정교회 수도원  4.파와 샘 (Ein Fawar)   5.켈트 샘(Ein Kelt)  6.성 조지 수도원  7.헤로데의 겨울 별장  8.예리코  9.착한 사마리아 여관  10.미츠페 예리코(유대인 정착촌)

아래 붉은 색 선은 예루살렘에서 예리코로 내려가는 1번 국도. 2번에서 7번까지가 와디 켈트 계곡

9번 착한 사마리아 여관에서 7번으로 이어지는 도로가 로마인들의 도로이다.

  

카리톤(St. Chariton) 성인은 와디 켈트의 제일 위쪽에 있는 파라 샘 근처에서 은수 생활을 시작하였다. 그가 바로 유다 광야에서 처음으로 은수생활을 시작한 은수자가 되었다.

 

구약 성경의 지명인 ‘아나톳’과 ‘알몬’으로 알려진 현재의 유대인 정착촌인 알몬(Almon 또는 Antatot)은 여호수아가 땅을 분배하는 장면에서 언급된다.

여호 21,18 아나톳과 거기에 딸린 목초지, 알몬과 거기에 딸린 목초지, 이렇게 네 성읍을 내주었다.

1역대 6,45 벤야민 지파의 지역에서도 게바와 그 목초지, 알레멧과 그 목초지, 아나톳과 그 목초지가 아론의 자손에게 돌아갔다. 씨족을 통틀어 그들이 받은 성읍은 모두 열세 성읍이다.

 

그리고 예레미야 예언자가 태어난 고향이기도 하다.

예레 1,1 벤야민 땅 아나톳에 살던 사제들 가운데 하나인 힐키야의 아들 예레미야의 말.

예레 29,27 그런데 지금 당신은 어찌하여 당신들에게 예언자 행세를 하는 아나톳 사람 예레미야를 꾸짖지 않습니까?

 

이와 같이 와디 파라는 벤야민 지파의 영토(여호 18,23 참조)였으며 예언자 예레미야의 고향이었던 유대인 정착촌인 알몬(Almon)을 통하여 들어가면 와디 파라가 나온다. 알몬 매표소에서 약 1키로 정도 급경사의 비탈길을 내려가면 울창한 숲과 시원한 물이 흐르는 냇가를 만나게 된다. 이곳이 바로 4세기부터 7세기까지 은수자들의 전성기를 이루었던 파라 라우라이다.

 

437번 도로에서 알몬(아나톳) 유대인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 

알몬(아나톳) 유대인 마을

파라 국립공원으로 들어가는 매표소 

 

켈트 계곡의 가장 상류에 위치한 파라 샘(Ein Fara-Ein Prat)은 한 여름의 오아시스를 찾아 휴식을 취하러 오는 이들과 등산객들 그리고 암벽 등반가들이 즐겨 찾는 국립공원이다. 

 

유대 광야의 모습 

풀을 뜯어 먹고 있는 양들 

 파라 샘으로 내려가는 급경사의 도로

능선 위에 있는 알몬(아나톳, 유대인 마을) 

 

 

 

아우렐리아누스 황제(270-275년)의 박해 때 젊은 카리톤은 그의 신앙 때문에 고통을 겪어야만 했다. 황제가 죽은 후(275년) 카리톤은 거룩한 도시인 성지를 순례하기 위해 조국인 이코니아(현재 터키의 도시)를 떠난다.

예루살렘 근처에 다다랐을 때 도둑들이 카리톤을 납치해 파라 계곡에 있는, 바위를 파낸 동굴 안에 감금했는데 그날 밤 도둑들은 모두 독살되어 죽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 일이 있은 후 카리톤은 그곳을 떠나지 않고 머물게 된다. 동굴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는 파라 샘에서 엄청나게 솟아나오는 시원한 물이 있었고 그림 같은 계곡의 절벽 사이로 난 계곡에는 작은 숲과 오아시스가 있었다.

자연적인 환경뿐만 아니라 지리적인 여건도 최적의 장소였다. 거룩한 도시 예루살렘은 아나톳에서 약 14km 떨어져 있어서 몇 시간이면 도달할 수 있는 거리였다.

 

국립공원 관리 사무소 및 매점 

 

매점 뒤쪽으로 해서 러시아 정교회(파라 라우라가 있던 자리) 수도원으로 올라가는 길 

 

파라 샘의 오아시스 

 

 

 

 

  

 

 

 

파라 샘에 있는 야외 수영장 

 

 

 

 

 

 

 

 

 

 

카리톤은 이곳에서 수년간을 혼자서 은수생활을 하였고 마음의 평화를 얻게 된 후 수많은 제자들이 주위로 몰려들기 시작하였다. 이제 거룩한 카리톤은 성지 이스라엘 유대 광야에서 첫 번째 라우라(Laura)를 만들게 된다.

카리톤에 의해 유대 광야에서 처음으로 시작된 파라 라우라 자리에는 현재 러시아 정교회의 수도원이 세워져 있다.

 

유대 광야에서 처음으로 만들어진 파라 라우라가 있던 장소에 들어선 러시아 정교회 수도원 

 

 

 

 

 

  

 

 

 

 

 

인간은 그 본성상 하느님을 향하여, 절대자를 향하여 방향 지워져 있다. 인간이 가진 하느님에 대한 갈망에서 시작되어 이러한 본성에 대한 완전하고 충만한 실현으로 나타난 것이 은수생활이다.

은수생활은 수도생활보다 더욱더 오래된 삶의 형태로 그 기원은 예수님께서 요르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시고 광야에 나가신 것에 둔다(루카 4,1-2). 예수님께서는 광야에서 40일간 머무르시면서 끊임없는 기도와, 완전한 단식 그리고 고독과 유혹의 시간을 보내셨다. 이와 같이 은수자들은 예수님을 본받기 위해 성령의 부르심을 받아 광야에서 사랑의 완전함을 살기 위하여 하느님을 찾아 광야로 떠나갔다. 무엇보다도 하느님과의 완전한 일치를 이루는데 방해되는 모든 것들에서 떠나 침묵과 고독 속에서 끊임없는 기도와 참회, 고행으로 하느님을 찾기 위해 광야로 나아갔다.

초기에 은수자들은 독립적인 생활을 하였지만 카리스마를 가진 영적인 스승 아래서 공동체를 형성하기 시작 하였는데 이것을 라우라(Laura)라고 부른다.

라우라는 어원적으로 산 사이의 좁은 길 또는 벼랑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라우라는 유다 광야의 은수자들이 물이 가까운 곳에서 산길이나 벼랑에서 찾을 수 있는 자연 동굴을 거처 삼아 한 영적 아버지 아래 모인 제자들의 공동체를 말한다.

 

라우라는 초세기 그리스도 수도원이 생겨나기 전 은수자들의 공동체를 의미한다. 작은 성당을 만들었고, 예루살렘의 주교인 마카리오(Macario, 314-333)에 의해서 축성되었다.

카리스마를 가진 스승의 주위로 각자 은수생활을 하면서 주일이 되면 함께 성찬례를 거행하고 친교를 나눈 후 다시 각자의 은둔처로 돌아가 기도와 일을 하며 살았다. 광야에서의 그리스도의 고행을 기억하며 행했던 단식은 은수자들의 가장 특징적인 수덕의 실천이었다. 주님의 수난을 기억하며 극히 소량의 음식을 먹었고, 어떤 이들은 돗자리를 만들어 팔았으며 어떤 이들은 추수철에 일해 번 것으로 나머지 달들을 지냈다. 그들의 주요 일과는 독서와 기도였다. 잠은 조금만 잤고 잘 씻지 않았으며 유명한 수도승들을 찾아 다른 지역으로 떠나곤 했다.

이러한 라우라의 형태는 이집트 사막의 성인인 안토니오와 파코미오에 의해 규칙서가 만들어지면서 수도자들의 공동체(체노비오-cenobio)가 만들어지고 오늘날과 같은 일정한 규칙 아래서 공동생활을 하는 수도원 형태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하였다.

 

이와 같이 이집트에서 성 안토니오(251-356)와 성 파코미오(290-346)에 의해 그리고 팔레스티나 가자에서 성 힐라리오(291-371)에 의해 은수자들의 삶이 시작되던 동시대에 유대 광야에서도 카리톤(260-350)에 의해서 은수자들의 삶이 시작된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진리를 찾기 위해서 파라 샘에 있는 카리톤의 이야기를 듣고 대화를 나누기 위하여 찾아 왔다. 이미 노년에 이른 카리톤은(340년 경) 광야의 다른 곳을 찾아 파라 라우라를 떠난다. 카리톤은 345년경에 베들레헴에서 동서쪽에 있는 헤로디온 서쪽에 수카 라우라(Suka)를 만들었다. 그 후 그는 첫 번째 라우라인 파라로 돌아와 마지막 생애를 마치고 그곳에 묻혔다. 카리톤 성인은 공동체 규칙서를 남기지 않았다.

 

첫 번째 파라 샘에서부터 굽이치는 계곡을 따라 약 5km 정도 내려가면 와디 켈트에서 두 번째  파와 샘(Ein Fawar)을 만난다. 첫 번째 샘에서 두 번째 샘으로 내려가는 오솔길은 능선 중턱을 따라 내려가는 길이 있고, 계곡을 따라 내려가는 길이 있다.

 

물이 흘러 내리는 곳에는 풀들이 우거져 있다. 

 

 

 

 

 

 

 

   

 

 

두 번째 샘에 이르기 전에 시냇물은 모두 땅으로 스며들고 메말라 있다. 

 

458번 도로. 1번 국도에서 458번 도로를 따라 약 5km 들어가면 두 번째 샘이 나온다. 

 

 

두 번째 샘에서 세 번째는 켈트 샘(Ein Kelt)까지는 계곡을 따라 비교적 어렵지 않은 길로 이어지며 약 4km 정도 거리이다.   

 

와디 켈트 계곡에 있는 두 번째 샘 : 파와 샘(Ein Fawar)

 

샘물이 솟아나는 곳이자 연못 

 

 

 

 

 

 

 

 

 

 

물고기들이 얼마나 많던지... 

 

 

둠벙은 수영할 수 있을 정도로 깊었다. 

 

 

 

 

 

두 번째 샘에서 흐르던 시냇물도 도중에 마른 와디(장마철에만 흐르는 시냇물)로 변한다. 

 

 

 

 

 

 

 

 

 

세 번째 켈트 샘에서부터 예리코로 향하는 수로가 놓여 있으며 켈트 샘에서 5km 아래쪽에는 성 조지 수도원이 있다.

 

와디 켈트에 있는 세 번째 샘 : 켈트 샘(Ein Kelt)

이곳에서부터 예리코로 향하는 수로가 놓여 있다. 근처에 베두인 마을이 있어서 이곳은 사람들이 찾지 않는 한적한 곳이다. 

 

 

 

 

베두인 마을이 있는 오아시스 

 

 

 

 

 

겨자씨의 비유에서 나오는 겨자나무 

겨자나무와 겨자 꽃 

 

베두인 텐트 

 

  

 

 

 

 

 

로마시대 헤로데 대왕이 예리코에 겨울 별장을 건설하면서 와디 켈트 계곡에 만든 수로 다리. 지금은 중간에 있는 파이프와 작은 수로를 통하여 물이 흐른다. 

 

절벽 아래쪽에 보이는 건물이 성 조지 수도원 

 

로마인들의 도로에서 내려와 성 조지 수도원으로 건너가는 다리 

 

 

성 조지 수도원 모습. 절벽 아래에... 

 

성 조지 수도원에서부터 왼쪽 낭떠러지 길을 따라 약 2km를 내려가면 켈트 계곡이 끝나는 예리코쪽에 하스모네아 왕조의 왕궁이자 그 후 헤로데 대왕이 더욱 크고 아름답게 확장한 헤로데의 겨울 별장이 있었던 유적지가 있는 곳으로 나온다. 그리고 이곳에서부터 예리코 큰 길까지 2km 거리이다.

 

로마인들의 도로에서 성 조지 수도원으로 내려가는 지점에 서 있는 아치

 

오른쪽에 보이는 푸른 풀들이 있는 곳으로 수로가 지나가고, 예리코로 내려가는 길은 계곡 왼쪽에 나 있다. 

은수자들이 살던 동굴들... 

 

 

  

 

성조지 수도원에서 예리코까지의 계곡은 협곡이고 절벽이다. 

 

협곡의 절벽에 있는 은수자들의 동굴들 

 

 

성 조지 수도원에서 약 2km를 내려가면 예리코가 보인다. 

 

협곡이 끝나는 지점의 왼쪽에 있는 헤로데의 겨울 별장. 헤로데는 하스모네아 왕조의 왕궁이 있던 자리에 그의 별장을 만들었다.

헤로데의 겨울 별장 유적지 

 

 

 

 

수도생활은 "교회가 주님으로부터 받은 천상 선물"이다.

(교회헌장 43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