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

마리아 무덤 성전(마리아 무덤 동굴)

테오필로 2007. 1. 12. 06:19

 

사자성문(스테파노 성문)을 지나 올리브 동산으로 향하는 도로를 따라 걷다보면 겟세마니 성당 조금 못미처 왼쪽에 “마리아 무덤 성전”이 나온다. 게쎄마니 대성전에서 북서쪽으로 약 200m 떨어진, 그리고 키드론 골짜기와 베다니아로 향하는 길이 만나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마리아 무덤 성전은 겟세마니 동산의 "사도들의 동굴"과 함께 4세기 말경까지 예루살렘에 있는 유대인 그리스도인 공동체에 의해 보존된 마지막 보루였다.


마리아의 무덤이 있었다고 하는 이 자리에 422-458년경 마리아의 매장과 승천을 기념한 기념 성당이 세워졌다. 431년 에페소 공의회에서 마리아를 "하느님의 어머니"로 공식적으로 선언된 것에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그 후 6세기에 무덤 성당위에 두 번째 성전을 지었으나 614년 페르시아군에 의해서 이 성당은 완전히 파괴되었다. 그 후 십자군들이 들어와 지하 성당을 발굴하고 1130년경에 분도수도회에서 성전을 크게 확장하여 다시 지었지만 1187년 살라딘은 마리아의 무덤이 있는 지하 성당만을 남겨두고 모두 파괴 하였다. 이슬람교도들은 마리아를 “예언자(예수)의 지극히 복된 어머니”로 공경했기 때문에 지하 성당은 파괴하지 않고 경배했다고 한다.


그 후 1363년경 부터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에서 이 지하 성당을 관리해왔었으나 1757년 그리스 정교회에게 관리권을 탈취당했고, 현재는 그리스 정교회와 아르메니아 정교회가 공동으로 관리하고 있다. 예수님 무덤성당과 베들레헴의 성탄성당 그리고 올리브 동산 위에 있는 예수님 승천 경당과 함께 이곳 마리아 무덤 성전도 STATU QUO(현상 유지 법) 규정하에 있는 곳이다.


4세기경에 기록된 “마리아의 죽음”에 관한 위경에는 사도들은 주님께서 말씀하신대로 마리아의 시신을 여호사밧 골짜기로 옮겨와 거기에 있는 새 무덤에 안장 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게쎄마니 지역에서 승천하셨다고 전한다.

 

지하 층계를 내려가면 오른쪽에 마리아의 무덤이었다는 곳에 빈 석관과 제단이 자리하고 있으나 역사적인 신빙성은 희박하다. 일반적으로 전승에서는 성모님이 돌아가신 곳을 두 곳으로 얘기하는데, 예루살렘과 터키의 에페소 이다. 그러나 마리아가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을 따랐던 제자들과 함께 여생을 보냈는지, 아니면 요한 사도가 에페소로 피신해 갈 때 마리아와 함께 떠났는지에 대한 여러 가지 전승들이 있지만 확실한 대답은 없다.

 

4세기부터 신앙인들은 마리아의 임종에 관한 신학적 사유가 전개되면서 성모승천을 고백했으며, 5세기에 예루살렘에서는 8월 15일이 하느님의 모친의 날로 제정되었다. 그리고 13세기경에는 보편적인 믿음이 되어 신앙생활에 자리잡았다. 1950년 교황 비오 12세는 “원죄에 물들지 않고 평생 동정이신 하느님의 어머니 마리아께서 지상의 생애를 마치신 뒤 영혼과 육신이 함께 천상의 영광에로 들어올림 받으셨다는 것은 하느님으로부터 계시된 진리”라고 선포했다. 성모 승천은 이처럼 초대 교회 때부터 내려오는 전승과 특히 구원의 역사인 구세사(救世史) 안에서 마리아가 차지하는 탁월한 역할을 바탕으로 교회가 선포한 믿을 교리다. 성모 마리아는 영혼과 육신이 함께 승천하셨기 때문에 예루살렘 겟세마니 동산에 있는 ‘마리아 무덤 성전’에 있는 무덤 자리에는 빈 석관만 남아 있는 것이다.

 

 

아래 도면은 마리아 무덤 성전의 평면도.

도면의 제일 아래쪽은 도면 아래의 사진에 보이는 출입구.

도면1 - 무덤 제대(그리스 정교회소유)

도면 2 - 제대의 동쪽 후진(그리스 정교회), 도면 3 - 성 바르톨로메오 제대(아르메니안 정교회)

도면 4 - 아르메니안 소유 제대 (시리아 정교회에서 사용), 도면 5 - 성 니꼴라 제대(그리스)

도면 6 - 북쪽 출입문쪽 제대 (그리스), 도면 7 - 제대(아르메니안 소유, 꼽틱 사용)

도면 8 - Mihrab (이슬람에서 메카의 방향을 지시하는 것),

도면 9 - 요아킴 성인과 안나 성녀에게 봉헌된 제대(그리스)

도면 10 - 요셉성인에게 봉헌된 제데(아르메니안)

 

 겟세마니 동산으로 향하는 도로 위에서 내려다 본 '마리아 무덤 성전'

 

 

출입문 오른쪽의 돌담길로 들어가면 겟세마니 동산의 사도들의 동굴이 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니에서 기도하실때 사도들이 잠든 곳..  

 

무덤으로 내려가는 지하 계단 

 

천정에 주렁주렁 달려있는 것은 등불...

 

출입문을 올려다보고...

 

아르메니아 정교회의 요셉성인에게 봉헌된 제대

 

 

그리스 정교회의 성 요아킴과 성녀 안나에게 봉헌된 제대

 

 

성 니꼴라에게 봉헌된 제대...오른쪽 부분

 

마리아 무덤 앞 성 바르톨로메오 제대에서 미사를 봉헌하는 아르메니안 정교회

 

아르메니안 정교회의 미사 - 영성체

 

마리아 무덤 정면 방향...

  

중앙에 있는 사제 뒤쪽에 있는 것이 무덤 입구

 

무덤 안에 사람이 보이지요...

 

무덤 안의 모습...초가 켜져 있는 아래가 빈 무덤...

 

 

무덤 안의 모습

 

마리아 무덤의 왼쪽면에서 본...

 

 

무덤 안의 모습 - 다른쪽 문...정면 제대에서 볼 때 왼쪽으로 난 문임,...

 

빈 무덤 안...(왼쪽에서 본...)

 

마리아 무덤 뒤쪽에 있는 이콘들...

이콘은 신앙의 대상을 그린 그림을 의미한다. 라틴교회에서는 성화상이 르네상스 시기를 거치면서

작가들의 노련미를 맘껏 발휘하였던 반면 동방교회에서의 이콘은 수도자들을 통해 엄격한 규칙속에서

그려져 왔다. 이것은 7-8세기에 우상숭배를 금한 계명에 의해 성화상 논쟁을 거치면서 나름대로의 신학을 정립 했다. 

이콘은 문맹자들에게 성서의 말씀을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하였고, 삼위일체, 그리스도, 성모님과 성인들을 주요 대상으로 했다. 동방교회 전통에서 이콘은 단순한 성화상이 아니라 공경의 대상이다.  

이콘은 썩은 계란을 사용한 템페라 기법에 의하여 나무판위에 그려졌지만 후대에는 이 이콘위에 인물의 피부 부분만 빼 놓고 그 위에 은판이나 금판 또는 진주 등으로 장식하는 "리사"(Risa) 기법이 발달하게 되었다. 이렇게 리사 기법에 의해 세공된 이콘은, 이콘에게 기도를 하여 기도가 이루어졌을 때 감사의 마음으로 왕이나 귀족들이 성화를 치장한 것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성모님 이콘은 성모님과 아기 예수님의 자세에 따라 여러가지 명칭들로 나뉘는데 이것은

"티히빈의 성모"(The Tichvine Mother of God)이다. 전승에 의하면 17세기초 스웨덴이 러시아를

공격하려고 하였을 때 이 티히빈의 이콘이 러시아를 수호하였다고 한다. 이때부터 사람들이 이

이콘을 깊이 숭상하기 시작했고, 티히빈 지방의 전통적인 성모성화가 되었다.

성모님은 머리를 약간 왼쪽으로 숙이고 왼손으로 신성한 아기 예수를 안고 있으며 오른손으로는

아기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있다. 아기 예수는 오른손을 축복을 내리기 위하여 올리고 있으며

왼손엔 지구본을  들고 있다.

 

 

 

 

 

 

 

 

무덤 반대쪽...아르메니안 제대가 있는곳...

 

마리아 무덤 동굴에서 밖으로 나가는 계단...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루가 1,38)